시편 125편: 영원한 안전

해설:

여섯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영원한 안전’에 대해 노래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시온 산에 비유합니다(1절). 시온 산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 도성은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든든한 요새처럼 보입니다. 믿는 사람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시온 산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인의 권세”가 힘을 떨칩니다(3절). 개역개정에는 “악인의 규”(the scepter of the wicked)라고 되어 있는데, “규”는 당시에 왕이 통치할 때 손에 쥐고 있던 막대기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왕이 되어 권세를 휘두르기를 원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력을 만들거나 권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힘쓸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일삼는 사람들이 득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등살에 믿는 이들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시고(4절) 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심판해 주시기를(5절)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절대 왕정 시절에 왕이 손에 쥐고 있던 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인류 공동의 욕망이 절대화 된 상징물입니다. 규를 손에 쥐고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군주 한 사람뿐이지만, 죄성에 물든 인간은 누구든지 그런 권세를 부릴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고,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내에서 권세를 부리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규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세와 권력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강해지고 커지기를 소망하기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고 작아지기를 구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의 그늘에 머물러 살기를 힘씁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섬기며 모두의 손에 쥐어져 있는 규를 내려 놓을 때 진정한 평화는 자리를 잡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6 thoughts on “시편 125편: 영원한 안전

  1. 주님을 의지하고 그 그늘아래 쉽을 얻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대로 선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욕심과 불평에 마름이 가지 않게 하시고 가나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평화로 이끌어 주십시요.
    굽은 길을 생각지 않게 원천 적으로 막아 주시고 맑고 깔끔한 정신으로 주님을 따라가게 일끌어 주십시요.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게 해 주시어 주님의 자비로 잘 통과하게 길을 열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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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죽었다고 생각했던 교만이 마음속에서 꿈틀됩니다, 성별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더러운 마음이 솟아납니다. 위선자임을 고백합니다, 보혈로 마음속의 죄를 항상
    씻기를 원합니다.반석위에 굳건히 뿌리 내리도록 도와주십시오, 능력의 팔로
    거룩한 길을 걷도록 인도 해주십시오. 우환 페렴 사태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에게
    희망을 허락하시고, 믿음의 식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때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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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에게 풍요로움은 무엇일까.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은행에 쌓여있는 많은 돈일까.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약간의 시기와 질투심이 있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항상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백만불이 모이면 이백만불을 갖고 싶고 이백만불을 갖으면 오백만불 천만불을 갖고 싶다. 그정도면 풍족하게 살 수 있지만 시기와 질투심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업신여긴다. 그들에게 아무 것도 주는 것 없지만 무시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과 사귀기 원한다. 고상한 말을 하고 명품으로 치장하며 유명한 쉐프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값비싼 와인을 마시기 원한다. 서로를 칭찬하는 것 같으면서 서로를 견제한다. 동정하는 것 같지만 사정없이 짓누른다. 부러워하는 것 같지만 질투심으로 속이 끓는다.

    결국 우리의 풍요로움은 비교에서 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나 홀로 산다면 아무리 억만금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한 것을 우리는 원한다. 홀로 살며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 보다 함께 살며 더 갖기를 원하는 것같다. 죄를 지은 사람들의 심리는 여기까지다. 그 이상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 아니 깨닫기에는 세월이 짧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간을 제한해 놓으신 것일까. 그렇지만 그 짧은 세월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도 않다. 내가 더 많은 소유하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보장된 것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한국분들 처럼 자녀교육에 열심인 분들도 없다. 가장 높은 확률에 투자하고 싶은 열정이다. 세상적 성공을 통해 자녀들이 잘살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역시 영원하지 못하다. 많은 경우 그 짧은 시간에서 조차 쓴 뿌리를 내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 하나님이 빠진 그 어떤 것에도 참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 교인들도 힘들어 한다. 나의 자아가 온전히 꺾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많이 소유해야 만족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작은 소유에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저 사람을 눌러야 내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낮아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가 부글부글하는데 어떻게 나보다 못한 자를 섬기는 삶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차원이 다른 삶이 틀림없지 않은가.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 없다. 자신의 자아를 깨는 것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어떤 분들은 젊었을 때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누리고 노년에 예수를 믿겠다고 한다. 물론 교회에 갈 수는 있겠지만 나이 많은 분들의 자아는 도끼로 찍어도 깨지지 않는다. 주님께서 나의 삶에 주인된 삶은 생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나의 자아가 깨져야 주님께서 그 안에 오신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사도바울도 사람이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날마다 죽는 것은 스스로를 자해한 행동이 아닌 그의 자아가 다시 깨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는 풍부에도 비천에도 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했다. 무엇이 그를 비교함에서 자유케 했을까. 분명 그는 평생을 세상적 가치에서는 가난한 자였는데 말이다. 주님을 만났을 때 깨어졌던 그의 자아를 그는 일평생 날마다 죽으며 그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그것이 비밀이 아니었을까.

    오늘 묵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님을 처음 만난 그 날 나는 분명 깨어졌던 자였다. 날마다 죽는 삶을 통해 사도바울이 깨달았던 그 비밀을 나도 깨닫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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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람들의 기본 욕구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안전에 대한 욕구입니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자신을 보호하며 쉴 수 있는 장소를 갈망하게 되며, 그로 인해서 안전함을 누리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삶에 뿌리내려 놓는 안전이 있습니다. 물질 혹은 성공, 가족, 등 자신의 안전을 기반으로 둘 곳을 찾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 묵상은 내 인생의 안전한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지 명확힐 알려줍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그의 안전이 영원할 것이다. 내 삶의 뿌리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심겨지길기도합니다. 그릴 할때 상황이 변한다한들, 어려움이 닥친들 한들,. 영원한 반석되신 그분안에서 살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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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려운 시간을 만나면 사람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습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고 악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 과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냐고 묻습니다. 죄의 뿌리, 악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런 지식이 구원을 가져 오지는 않습니다. 1850년대 콜레라가 창궐할 때 오염된 물을 한동네 사람들이 같이 마시는 공동수도 펌프에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발견한 의사의 노력 덕분에 콜레라를 극복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고, 100년 전 스패니쉬 풀루 팬데믹 때 배운 물리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오늘도 기대 하면서 지구촌이 함께 환난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다스리게 하지 못할 것 (3절)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믿기 때문에 하루하루 견뎌내고 앞을 볼 수 없는 중에도 발걸음을 뗍니다. 말씀 앞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그분께 우리의 처지를 아뢸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우주의 법칙과 선과 악의 지식을 깨달을 수 없지만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헤쳐 나가는 지혜와 영감을 주시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은혜로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연약한 내게 풍족한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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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미국의 첫번째 대통령 조지와싱턴은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자기 고향에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정이 만연했던 시대에 와싱턴장군의 지지도를 생각하면 그는 충분히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 헌법을 지키기를 원했기에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본문에 시편저자는 악인의 권세는 의인의 땅에 있지 못하는데 이는 의인들이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권력은 썩기 마련이기에 우리가 조심해야 된다고 경고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인의 권세는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나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돈과 권력을 토대로 악인의 권세가 세워집니다. 그건 돈과 권력 자채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많은 돈과 권력이 어느 사람에게 고여있으면 제아무리 인품이 좋더라도 악인이 되기 마련인거죠. 우리가 가진 권력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그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일 뿐이란 걸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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