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45-66절: 십자가에서 만난 하늘과 땅

해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후 얼마 지나 정오쯤 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약 세 시간 동안 온 세상이 깜깜해 졌습니다. 그 어둠이 걷힐 즈음에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소리를 지르십니다(46절). 그것은 시편 22편의 첫 절을 기도로 드리신 것입니다. 얼마 후 예수님은 다시 한 번 크게 외치신 후에 운명하십니다(50절). 

그 때 예루살렘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집니다(51절). 성전 휘장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장벽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던 벽이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때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 났고(52절)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 났습니다(53절).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지금 우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과 죽은 자들의 세상 사이의 벽이 잠시 허물어졌다는 뜻임에는 분명합니다. 현장에 있던 백부장과 그의 병사들은 뭔가 알 수 없는 경외감에 사로잡혀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54절)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멀리서 지켜 보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십자가 처형은 우리 식으로 하면 효수형(죄수의 목을 잘라 거리에 걸어 두는 형벌)처럼 대중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기에 대개의 경우 사형수의 시신이 부패하여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돌무덤에 안치합니다(57-60절). 정치범으로 처형 당한 사형수의 시신을 수습하게 해 달라는 청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요셉은 비밀리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그분이 사형 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시신이라도 수습해 드리고 싶었기에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여인들이 지켜 보았습니다(61절).

다음 날 산헤드린 의원들이 빌라도는 찾아가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던 예수님의 말씀을 거론 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치지 않도록 무덤 경비를 단단히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63-64절). 빌라도는 경비병들을 그들에게 내 주어 무덤을 지키게 합니다(65-66절). 

묵상: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고 있던 두겹 짜리 커텐을 말합니다. 그 휘장은 최고급 실로 겹겹이 꼬아서 만든 것으로서 벼린 칼로 여러 번 갈라야만 겨우 구멍을 낼 정도로 두껍고 단단했습니다.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찢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일 년에 한 번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가 모두에게 열렸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10:1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선 자리는 그곳이 어디든 지성소라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께서 운명하신 다음에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정확이 어떤 사건이며 또한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차원과 하나님의 차원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이 잠시 뚫린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개인 개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건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십자가는 진실로 신비요 비밀이요 기적이며 능력입니다.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마태복음 27장 45-66절: 십자가에서 만난 하늘과 땅

  1.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목숨을 내어주는 마지막 순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절규하는 예수님을 상상해 봅니다, 마지막 순간 남은 의식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주님을 상상해 봅니다.
    휘장이 찟어지며 하늘 문이 열리며 땅과 화합시키는 십자가의 희생과 그후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이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정상적인 삶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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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께서 돌아가실때, 그 순간을 지켜보던 여인들과 무리들의 믿음을 다시 새겨봅니다. 비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받도록 막을 수는 없었으나, 끝까지 돌아가시는 모습부터 장사하는 것까지 최선을 다해서 함께 하였습니다.

    막달라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여자였습니다. 그 은혜를 끝까지 그분과 함께 함으로 지켰습니다. 나도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은 자로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이 향한 그 마음과 생각에 함께 동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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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지성소에 언제나 들어갈수있는 특권을 허락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십자가 현장에서 고백한
    백부장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시신을 안장한
    아리아대 요셉의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수모와 고난과 죽음까지 감당하신
    하나님을 잊지않고 죽음 없는 부활이 없는것을 항상 기억하며 코로나 사태를
    감사히 이웃과 지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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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 같은 부활절은 처음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는 평소와 같은 날이었는지 몰라도, 오랫동안 병상에서 주일을 맞는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화상예배였는지 몰라도 어제는 부활절 같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처음이라는 점에서, 익숙한 모습과 기대를 완전히 깨뜨렸다는 뜻에서 어제 같은 부활절을 맞이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한 십자가 사건을 이 땅의 언어로 번역해본들 여전히 안개처럼 뿌옇기만한데 이제는 오히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삶의 여러 방식에 안녕을 고하며 과거를 정리해가는 시간이기에 부활의 새 존재로 사는 때가 되었습니다. 성전의 무겁고 두터운 휘장은 이미 내려왔습니다. 누구라도 주님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절 이후는 그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우리의 삶으로 또 한번 해석하는 시간입니다. 나의 개인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시간이요, 우리 사회가, 인류가 새롭게 정리되는 시간입니다. 그 새로운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이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주님만 높이고 그분만 의지하는 신인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온 피조물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완전히 잠기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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