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1-26절: 가룟 유 다와 빌라도의 죄

해설:

새벽이 될 즈음 산헤드린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합의합니다(1절). 당시 산헤드린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에 유다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 관저로 향합니다. 

그 때 가룟 유다는 일이 잘 못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넘겨 줄 때 그는 사형까지 갈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을 되돌려 주려 했지만 그들은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 목을 매어 자살을 합니다(5절).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내던지고 간 은 삼십으로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태는 이 사건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떠 올립니다(9절).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지만 너무 늦었고, 또한 돌이키지 않고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인생을 살았습니다.

산헤드린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고발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라고 묻습니다(11절). 로마의 식민지에서 왕으로 자처하는 것은 곧 반역 행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11절)라고 대답 하시고는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수님은 그 뜻을 따르기로 결단한 상태이기에 침묵을 지키신 것입니다. 총독은 예수님의 침묵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14절). 

빌라도는 난감해졌습니다. 자신이 볼 때 유대인 권력자들이 예수를 모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18절). 잔인하고 무법적인 것으로 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빌라도였지만 어떻게든 그 사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관례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놓아 줄 묘수를 찾아냅니다(15절). 그는 바라바와 예수님을 무리 앞에 세우고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요구합니다. 무리가 악명 높은 바라바보다는 예수님을 택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 하라고 요구하게 만듭니다. 빌라도가 당황하고 주저하자 무리의 소동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24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무리는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25절)라고 응답합니다. 그들은 흥분하여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의 말은 예언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내어 줍니다.

묵상:

가룟 유다와 빌라도는 기독교 역사 상 최악의 죄인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가룟 지옥의 가장 아래층에서 유다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범인으로 ‘사도신경’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난 세월 동안 두 사람에 대한 변호를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두 사람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변호의 이유입니다. 하나의 드라마가 흥미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악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악역없는 소설이나 드라마는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가룟 유다와 빌라도는 하나님의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들인데, 악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구원 받지 못할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입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궤변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연기자들은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악역을 맡았다고 해서 그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실제 삶의 무대에서는 자신과 다른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그 역할을 자임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른 꿈을 가지고 그분을 따라 다녔고,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세웠습니다. 빌라도는 선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보호하려 한 것 같지만, 그는 철두철미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고 선택하든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의 계획 안에서 악역을 맡을 것인지 좋은 역할을 맡을 것인지를 분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6 thoughts on “마태복음 27장 1-26절: 가룟 유 다와 빌라도의 죄

  1. Good Friday? 오늘은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대 제사장들과 장노들의 고발로 빌라도 앞에서 수치를 당하시며 뭇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살과 모든 피를 인류를 위해 내어주며 이생을 마감하시는 날인데 왜 Good Friday 라고 할까?
    많은 사람들에게 늘 의문인 가룟 유다와 본디오 빌라도의 역활이 마치 그들의 운명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한 모순돤 선택을 보며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내 한 순간이 유다가 저지른 배반이 되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하는데 개으르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또 빌라도 같이 세상의 출세를 위해 잘 못된 결정을 하는 오류가 없도록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항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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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던 고난이었습니다. 온 인류의 죄는 주님의 육신에 담아졌고 십자가에 박힌 주님의 손과 발에 피가 되어 한 방울 한 방울 이 땅에 뿌려 졌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나의 부모님의 죄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의 자녀들의 죄를 위해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무 희망도 없이 세상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옆에 달린 강도의 죄도 용서하시고 그를 품어주셨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시고 자신을 못박는 자를 위해 기도하신 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고통에 절규하시며 주님을 죽으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으로 부터 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치러야 했던 그 가치의 정도가 어떤 것인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찾게 됩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흔들리고 죄에 약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넘어짐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고통을 가져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만히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죄를 범했는데 아무일도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사생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참 아들임을 증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오고 곤고가 오고 핍박이 오고 기근이 오고 적신이 되고 위험과 칼이 우리를 찾을지라도 그것은 나를 바로 잡고 훈련시켜 반석위에 선 하나님의 참 아들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리 어렵고 고난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의 사랑은 끊이지 않는 것을 알게하시니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이 환난과 곤고는 내가 사생자가 아닌 하나님의 참 아들됨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 드립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범죄가 우리를 따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일 되풀이 된다면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고 우리의 참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배울 때 까지 반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룟유다는 달랐습니다. 그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주님의 십자가 옆에서 구원받았던 강도보다 못한 자였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택함을 받은 자가 구원의 대상에서는 탈락되었습니다. 생각으로 믿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생각으로 하는 회개와 마음을 찟는 회개도 다른 것 같습니다. 주님과 삼 년을 함께 있었던 가룟유다는 자신의 이념과 야망을 위해 생각으로만 주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아무리 회개하려 했어도 마음에 없는 주님께 그의 뉘우침은 결국 그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고 생각에 머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조금있으면 진정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인명피해를 내었고 많은 경제적 손실이 있었습니다. 세계전쟁을 방불케 했던 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신앙인들을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회개해야 할까요. 죄가 잘못된 과녁을 향한 것이라면 돌이키는 것이 회개일 것입니다. 이 사태가 진정된 후 감리교단은 다시 동성애로 인해 분리가운데 화합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분리하려는 계획을 회개하지 않고 대형교회는 다시 몸집 불리기를 계속하며 교인들은 다시 기복신앙으로 돌아가 예수 믿고 잘 먹고 잘 살자고 한다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고난을 통해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에 머무는 회개는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이 고난만 있는 삶일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지라도 주님 곁에서 마지막 순간에 기사회생한 강도의 구원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디 이번 고난이 신앙인들을 진정한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 기도의 자리를 찾을 때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잠시 당하는 고난에서 지켜 주실 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고난은 어렵지만 고난을 통해 주님의 율례를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임을 확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멈추지 않는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충만케 하시고 기쁨으로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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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때 우유부단한성격을 가진 저는 결정하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평화주의자 성향을 가진 터라, 더욱 더 사람관계에서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정을 못내리는 성향이었지요.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빌라도의 행동들이 조금이나마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있고,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리더로서 충분한 영향과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에도 분명히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는 말이 명시되어있듯이, 그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제 삶에 분명한 기준과 하나님나라의 의가 있어서, 어느 상황에서든지 타협하지 않고 그분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금요일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그 놀라운 사건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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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직도 빌라도와 같이 비겁하고 교활한 생각과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시련과 힐난을 받더라도 우직한 믿음으로 옳바른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원합니다.
    2천년전 바로 이 시간에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말로 형용할수없는
    고통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다시는 더 주님을 못박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웃과 더불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이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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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갑자기 예수님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빌라도와 군중이 주인공이 된 듯한 그림입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이미 내린 결론에 형식적으로 도장을 찍어주는 인물일 뿐입니다. 군중은 마치 경기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구경하며 흥분하고 열광하는 집단최면에 걸린 듯한 모습입니다. 이 와중에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예수님을 넘기는 결정은 그리 쉽게 하지 못했을텐데 자살하는 데는 단 하루가 걸렸을 뿐입니다. 배반의 댓가로 받은 은화를 성전 안에 던졌다는 것도, 그 돈을 성전에 두는 것은 안 될 일이라며 나그네들을 묻어주는 밭을 사는 데 썼다는 것도 기막힌 디테일입니다.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바르는 여인에게 그 큰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쓰면 더 좋을 것이라던 제자들의 말이 유다의 피값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옳지 않은 일인줄 알면서도 압력에 밀려 불의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사람들 앞에서 손까지 씻는 빌라도는 또 어떻습니까.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공직에 앉은 사람에게 압력이란 실 가는데 바늘 가듯 따라다니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빌라도의 부인마저도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빌라도의 정치적 계산은 이미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 한복판에 침묵하며 서 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정작 본인은 아무 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선 아무 힘도 쓰지 않으시고, 사람의 아들로선 초월적인 인내로 이 시간을 지나십니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유다의 배반이나 베드로의 부인, 빌라도의 방조나 군중의 배신을 묵묵히 견디십니다. 그분의 고통이 우리에게 부활의 새벽을 가져옵니다. 그분이 고통 받으시는 것을 오늘 똑똑히 보는 우리는 부활의 기쁜 소식 또한 똑똑히 들을 것입니다. 두 주일 전부터 사위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식구들과 격리해 앓고 있는데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으니 코로나 검사를 받았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또 닷새 엿새가 걸렸는데 그 사이에 몸이 좋아졌습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특히 손녀들 걱정에 우리 내외도 밤잠을 설치며 염려했습니다. 막연한 기도가 구체적인 기도가 되었습니다. 3월 초에 나도 사위와 같은 증세로 아팠기에 그의 불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서야 숨쉬기가 편해졌습니다. 철모르는 손녀들은 깔깔거리고 재재거리며 엄마와 꼭 붙어사는 이 기간을 백 퍼센트 즐기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주님의 손길이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회복의 아침을 맞은 환자들에게, 생명의 특권을 누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십자가가 또렷이 보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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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치인들 중에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난뒤 극구 부인하다 마지막에 곧잘 이렇게 얘기합니다. I have done nothing wrong. Everything I have done is within my power and I did not violate any law. 내가 한 행동이 비록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기에 괜찮다 이런 거죠. 그리고 뻔뻔하게 계속 임기를 이어나갑니다.

    오늘 본문에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을 죄를 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풀어줌으로 유대리더들이 화낼까 두려웠고. 그렇다고 예수를 쉽게 사형시켜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화내게 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고심끝에 예수와 바라바 둘 중에 하나를 사면시켜주겠다 얘기합니다. 어느 결과가 나오든 자신의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묘수였습니다. 결국 유대리더들과 무리들은 바라바를 사면시키고 예수를 사형시킵니다.

    빌라도는 잘못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사형시킨 건 결국 유대장로들과 군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분명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사면함으로 자신의 정치적 편리가 아닌 정의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정의를 쫓지 못했습니다. 비겁한 행동이었죠.

    저도 삶속에 이런 결정을 내려야 될 때가 있습니다. 불법은 아니지만 불의로운 길을 가자고 손을 뻗습니다. 그때 내가 손해보더라도 뒤로 돌아서 정의로운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질질 끌며 고민하지 않고 단칼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시험이 없는 지금 마음을 다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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