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1-25절: 하나님의 섭리와 자유의지

해설:

예수께서는 곧 시작될 유월절에 당신이 “넘겨져서”(2절)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유대인 권력자들은 그분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사형 집행 권한은 총독에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님을 제거할 모의를 합니다. 그들은 만일에 일어날 소요 사태를 염려하여 유월절에는 피하기로 합니다(5절). 하지만 그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의 계획과 달랐습니다. 

유월절 전 날에 예수님은 올리브 산에 있던 베다니에서 묵으셨습니다. 그곳에 나병 환자였다가 예수님께 치유 받은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동안 한 여자가 향유 병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7절). 그것은 성인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그 여인은 다만 사랑하기에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려 한 것 뿐인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행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11절)이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너희가 늘 해야 할 일이지만”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때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그 시점에서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행동이 복음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칭찬하십니다(13절).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시는 동안 가룟 유다는 은밀히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밀약을 합니다. “은돈 서른 닢”(15절)은 율법이 정한 노예의 몸값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이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예수님의 가치를 깎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처음부터 돈에 목적을 두지 않았기에 그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무교절 첫째 날”(17절)은 오늘로 하면 목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날 저녁에 가정마다 가장의 주도로 유월절 식사를 합니다. 옛날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처럼 누룩을 넣지 않은 빵(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로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유월절 식사를 준비합니다.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동안 예수님은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넘겨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21절).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모두 불안해집니다(22절). 모두가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죽는 것이니 괜찮지만, 당신을 죽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유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졌다 해도 그의 죄는 용서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그 말에 찔렸던지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25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고 답하십니다. 겉으로는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다”는 암시를 담고 있는 대답입니다.

해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운행과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간의 선택과 실수와 사고로 인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때로는 직접 개입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일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 보시며 내버려 두십니다. 그 어떤 일도 그분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일들을 엮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것을 ‘섭리’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섭리 안에 있고 그분의 섭리를 위해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말은 그분의 큰 그림을 이루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등지고 산다는 말은 그분의 큰 그림에 방해되는 방식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선택한 죄악을 사용하여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는 여러 사람들이 악역을 맡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로마 총독과 군사들 그리고 가룟 유다까지.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의지를 따라 악역을 맡습니다. 하지만 그들 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죄악은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을 사용하여 당신의 섭리를 이루십니다. 자신이 선택한 죄악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 죄악이 용서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본인이 받아야 합니다. 

자유의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지만 또한 가장 위험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5 thoughts on “마태복음 26장 1-25절: 하나님의 섭리와 자유의지

  1. 갑진 향유 한 옥합을 드리는 여인과 탈선을 하여 예수님을 넘겨주는 유다의 잘 못 된 선택을 생각하며 어제의 한 여인였던 내가 오늘은 유다로 타락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묵항해 봅니다, 한 순수 한 여인은 복음이 전해 질 때마다 기억되며 또한 유다 역시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믿는자들에게 회자되는 사건을 통해 주시는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때때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힐 때 이 결정이 나와 예수님 사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심사숙고해 결정하는 지혜를 구하며 끝내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결정되어지는 운행을 받아드리고 늘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는 제자로 살기를 간구합니다.
    이번 코로나 환난을 통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의 은혜와 은총을 더 절실히 간구하며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며 조용히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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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문에 한 여인은 가지고 있던 비싼 향유를 깨서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 향유가 많이 비쌌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여인을 나무랍니다. 차라리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쓰면 된다고. 그러나 제자들의 발상은 가난구제보다 단지 향유의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나온 책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인이 가진 예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그리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던 거죠. 그런 제자들의 마음은 바로 다음에 드러납니다. 예수가 제자들 중 한명이 자신을 배반할 거라 얘기했을 때 모두들 예수께 그 사람이 자신은 아닐거라고 묻습니다. 그만큼 12제자 모두 어느정도 마음이 흔들려 있었습니다. 그들도 여러 소식통으로 곧 유대권력자들이 로마의 힘을 빌어 예수와 자신들을 잡아갈거라는 얘기를 들었슬거라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냅니다. 저는 그런 불안을 지우기 위해 식료품에 가서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식량을 구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으로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을까 계속 기웃거렸습니다. 특히 2주 전에 불안이 가득해서 어떻게 하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 있던 거죠. 우리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이 마음에 한 톨도 없었습니다. 어찌 이리 믿음이 약한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만 힘이 솟는 건 이런 불씨가 꺼진 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 기회를 주신다는 겁니다. 거친 파도에 휩쓸린 배같은 제 마음을 진정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게 온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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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의를 보기원합니다. 그리할때, 모든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과 뜻을 더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향유를 예수님께 부웠던 여인의 행동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던 가치 두 가지 모두 소중할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향유를 부은 행동이 더 기억되고,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인생을 살아갈 때, 두 가지 혹은 여러가지 가치들이 충돌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의를 잘 알아서, 제 자신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결정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조금 오래된 영화이지만,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지구를 떠나 우주 블랙홀에 빠지게 됩니다. 그 블랙홀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다른 고차원의 세계에 갖히게 되어집니다. 즉, 3차원 공간인 지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 동시에 보이게 되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3차원 공간의 지구에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지요. 다른 말로 말해서, 다른 고차원에서 하는 일들이, 3차원의 공간에서는 모두 다 해석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3차원적인 구조와 사고 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큰 섭리와 계획들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심지어 악한 부분까지) 선을 이루시는 것, 그 자체가 우리는 100% 이해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차원에 계신그분을 신뢰할때, 놀라운 계획을 그분의 섭리 영향안에서 순종할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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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비록 치유를 받았더라도 나병환자집을 서슴치않고 방문하시는 주님! 제 마음에도 오신줄
    믿습니다.비록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주님께 기꺼이 향유를 바치는 용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계획과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사역에만 순종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허락하신 코로나 사태가 고난 주간과 겹친 이유도 통곡하며 회개하고
    온세상의 크나큰 영적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질책하신 주님! 이웃과 더불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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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요즘 같은 환난의 때에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악은 왜,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이 많아집니다. 자연적인 재해 (질병도 포함한) 로 인한 고통의 뜻과 인간의 도덕적인 선택에서 오는 고통의 값은 다르지만 고통은 우리 곁에 늘 있습니다. 유다의 선택이 히틀러의 계획과 같이 많은 생명을 멸하는데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일을 이루는 데 쓰여진 결과가 되지만 유다는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배신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갑자기 미움으로 바뀐 것도 아닐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그리는 유월절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유다가 빵 조각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찬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눈 앞에서, 사탄은 유다를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귀신을 내쫗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은 유다가 불쌍하지 않았을까요. 유다의 마음속 소용돌이가 보이지 않았을까요. 예수님도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밤새 눈물로 기도하신 것을 보면 장차 다가올 십자가의 현실이 마음을 짓눌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이며 또한 완전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우리는 하나님으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과 사람으로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신비한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뿐입니다. 유다에게서 나에게로 초점을 옮깁니다. 나는? 나는 아니지요? 내 믿음이 나를 지킨다는 생각은 기특한(?) 착각일지 모릅니다. 유다도 자기의 믿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이만큼 살고 있을 뿐 내 믿음이, 의지가, 기도가, 소망이 나를 지탱하지 못합니다. 쉬운 결정이든 어려운 결단을 할 때든 주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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