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23-46절: 하나님의 차원에 눈 뜨라

해설:

이번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찾아 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종말에 모든 의인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런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알고 찾아와 논쟁을 겁니다. 그들은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형사취수’의 법을 사용하여 부활의 부조리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29절)고 대답하십니다. 

“부활 때”(30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를 말합니다. 그 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30절)는 말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의 방식은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부활 이후의 상황을 추정하며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활 혹은 영생은 이 세상의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에서의 인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달리 설명할 수 없어서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 즉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32절). 여기서 과거형 동사(…였다)가 아니라 현재형 동사(…이다)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아브라함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3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어 있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부활 문제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 사이에 자주 다투는 논쟁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문제로 예수님을 몰아 세울까 궁리합니다. 그러던 중 어떤 율법교사가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것은 율법교사들이 자주 논하는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5절의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레위기 19장 18절의 “이웃 사랑의 계명”을 그 답으로 제시합니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39절)라는 말은 중요성에 있어서 같다는 뜻입니다. 613가지나 되는 율법 조항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한 시행세칙인 셈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누구의 자손인지 물으십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다윗의 자손입니다”(42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110편 1절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한 사실을 지적 하시면서 그것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리스도는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분에 있어서는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분의 신적 성품과 능력에 있습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영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을 넘어서는 차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 차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 모릅니다. 그 차원을 가르키기 위해 우리는 “영원”, “절대”, “완전”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1차원 시간의 흐름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일직선 상에서 앞으로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눈에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지나간 과거가 하나님에게는 여전히 현재이고, 우리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하나님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일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차원에 눈을 뜨는 것이고 그것을 믿고 그 차원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차원에 눈 뜨고 그 차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면 비로소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차원에 눈 뜨지 않고는 자기 중심성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마태복음 22장 23-46절: 하나님의 차원에 눈 뜨라

  1. 현재의삶을 기본으로 하는 고정 관념에서 벋어나 하나님의 차원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차원에 눈을 뜨고 믿음과 소망을 갖고 기뻐하며 현실에서 하나님의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지키며 살기를 권고하시는 말씀을 묵상상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산다고 하면서도 항상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 생각안에 있는 고정관념에세 해방되어 주님의 차원으로 이끌어 주시고 늘 깨어있는 믿음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단기구의 절대 부족으로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렸는지 수자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음 주말이나 가야 확실 한 진로를 알수있고 앞으로 그에 대한 대응이 장기간에 걸처 우리의 삶을 피팍하게 조여올때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지혜와 믿음을 간구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주님께 한 발 더 가까히 갈 수있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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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영의 눈을떠서 하늘나라를 이땅에서 옳게 보기를 원 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이 가장
    중요하고 귀중하기에 헛되게 살지않고 이웃과함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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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만 있는 것이 이제 겨우 열흘 밖에 안되었나 달력을 보고 또 봅니다. 긴 싸움으로 갈 것이 뻔한데도 마음은 자꾸 앞서갑니다. “정상” “일상”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고 되레 우울하게 만듭니다. 어제 주일은 원래 여선교회 (United Methodist Women) 수련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토요일 새벽부터 주일 오후까지 바닷가 근처에 있는 연회 소유 Aldersgate Retreat Center에서 영성수련과 정기임원회의를 하는 주말인데 물론 취소되었습니다. 그래도 연회 회장이 다 잘 있는지 얼굴도 보고 6월에 있을 연회 Annual Conference 관련 프로그램을 의논할 겸 회의를 하자고 해서 생전 처음 zoom 이라는 화상회의를 해봤습니다. 이메일로 회의 어젠다를 미리 미리 돌리고 논의할 내용을 줄이고 줄여서 한 짧은 회의였는데 평균연령이 67, 68세가 되는 임원들이서너 명만 빼고 전원 모니터에 등장하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6월 연회도, 7월 선교학교도 예정대로 열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business as usual” 을 상상하며 거기에 맞춰 준비한다는 취지로 회의를 한거였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어제 주일에는 남편과 둘이 영상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니 뭐라 말하기 어려운 답답함과 우울함이 갑자기 몰려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을 한다는 것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다 불편하고 싫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감사함으로 잘 다스리며 다독거린 마음이 갑자기 반란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몇 시간 가지 않고 사그러들었습니다. 겉은 평온해도 속은 들끓었던 시간을 달래준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unorthodox”라는 4부 드라마가 공신이라면 공신인데 ultra orthodox Hasidic Jewish 커뮤니티의 한 어린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종교가 답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삶, 전통과 관습의 감옥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며 지금 내가 겪는 “코로나블루” 우울증을 평생토록 현실로 안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지금 투정이나 부리는 애로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드라마처럼 유대인 사이에서 여자는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줍니다. 여자는 다만 애를 낳는 존재, baby makers 라는 표현이 드라마에서도 나옵니다. 이방인 여자라서 주인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개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파도 바리새파도 다 틀렸다고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신 사랑이 지금은 비록 구름에 가린 듯, 멀리 있는 듯 느껴지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마음을 낮추고 또 낮추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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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신 하나님,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세계와 1차적인 시간의 흐름에만 갇혀있는 하나님이 아닌, 시간 넘어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론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차원의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소망을 두고 오늘도 살아갑니다.**

    **나의 소망은 오직 그분께 있으며, 그 나라에 있습니다.**

    **짐엘리엇 선교사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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