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1-22절: 열매 없는 종교의 운명

해설:

예수님과 제자들은 드디어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에 있던 벳바게라는 마을에 당도하십니다(1절). 그곳에 잠시 여장을 푸신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와 그 새끼를 데리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5절). 제자들이 나귀와 그 새끼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자 예수께서 올라타시고 예루살렘 동편 문을 향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동문을 통해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무리는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8절)습니다. 그것은 옛날 마카비 형제가 희랍인들을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을 때 무리가 했던 행동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카비처럼 로마를 상대로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후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체 바깥으로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제사에 쓸 짐승을 파는 사람들과 로마 화폐를 성전용 화폐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심한 듯 그들을 향해 진격하여 매매 행위를 못하게 만듭니다(12절). 그러면서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십니다(13절). 성전이 더 이상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때 성전 광장에서 구걸하고 있던 장애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습니다(14절).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15절). 그들은 아이들이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라고 외치는 모습을 가리키며 예수님을 책망합니다. 만일 로마 경비병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곧바로 군대를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제 때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정치적인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8편 2절을 인용 하시고는 돌아서십니다(16절).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나와 베다니라는 동네에서 밤을 지내십니다(17절).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실 때의 일입니다. 아직 식전이었기에 무화과 열매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길 가에 있던,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로 가십니다. 하지만 그 나무엔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그러자 즉시로 그 나무가 생기를 잃고 말라 죽습니다(19절). 그것은 형식만 무성한 성전과 유대교의 운명을 암시하는 예언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와 사랑과 거룩의 열매는 없고 제사와 율법과 계율만 풍성한 성전의 현실이 그 무화과나무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을까?”(20절)라고 묻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은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라고 물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신기한 일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초점 잃은 질문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구한 대로 이루어 주실 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해 주십니다(21-22절).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그분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묵상: 

예수님과 무리는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습니다. 성인 남성이 나귀를 탄 것은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광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예언대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화려한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무리는 자신들의 기대대로 예수님이 혁명 전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는 나귀가 말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무리는 일 주일도 되지 않아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라고 환호했던 그분을 향해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했던 성전 종교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대교 교권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일했고, 온갖 형식과 전통과 관례를 만들어 백성을 억압하고 오도했습니다. 성전에서 진행되고 있던 그 많은 희생과 헌신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교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일반 백성에게서도 하나님꼐서 찾으시는 의와 사랑과 거룩의 열매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속속들이 타락한 그 종교가 곧 심판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무화과 나무를 통해 예언하십니다.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에 참담하게 멸망됩니다. 

바울 사도는 말세가 되면 경건의 형식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딤후 3:5)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 그와 같은 말세의 징조를 자주 봅니다. 속속들이 타락하여 결국 태워버릴 수밖에 없는 세대가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할 일입니다. 

4 thoughts on “마태복음 21장 1-22절: 열매 없는 종교의 운명

  1.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김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상기 합니다, 머리 속에 하나님하면 크고 광대하며 위엄이 넘치는 분으로 각인 되어있지만 또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겸손과 소탈한 하나님을 마주합니다.
    외형적으로 거대하거 화려한 대형 교회들을 나무라며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믿음의 공통체가 가져야 할 모습을 배웁니다.
    경건의 형식에 취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하에 내 믿음이 성장하기를 간구합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 하루가 지배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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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로나 사태를 통해 내자신이 가족이 그리고 교회가 회개하고 정결하게되며
    기도하는 곳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겉 모양만 보기좋게 치장하지 말고
    항상 성령 충만하여 이웃과함께 의와 사랑과 거룩한 열매를 맺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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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셨는데 오늘 그 답을 봅니다.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채 높은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 밑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권력자들을 속 시원하게 무릎 꿇게 하실 분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길에 자기 옷을 길에 깔고 그 위로 예수님이 타신 나귀가 지나가게 하는 군중의 눈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큰 뜻, 큰 그림을 아직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지금 다 볼 수 없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직은 아닙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신 일이나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린 일은 우리 개인과 사회에 던지는 예수님의 숙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기 위해 모인 성전에서 정말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가 제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채 서 있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보느냐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와 절규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예수님께 간청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이 듣기만 한다면 딸에게서 귀신이 물러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간절함의 대상, 목마름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그분의 나라는 로마를 이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에 앞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부터 올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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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말씀과 묵상이 제 마음을 내려칩니다. 예수님을 동상이몽으로 생각하는 무리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교회와 목회자 및 신앙인 모두가 종교의 형식은 잘 갖추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모습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봅니다.

    현실에 마주치고, 어려운 상황에 타협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종교의 관례와 전통만 남아 있어서, 경험되어지지 못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있지 않은지 회개합니다.

    지금 이 어려운 시기를 통해서, 깨닫고 회개하여서, 이 세대와 다음세대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구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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