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16-30절: 하나님 나라와 물질

해설: 

이번에는 어떤 부자가 예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16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계명들을 지키라고 답하십니다. 그 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과 다른 율법 중에서 이웃과 관계되는 계명들을 예로 드십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들은 다 지켰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20절)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율법 규정을 잘 지켜 왔다고 믿었고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법 규정을 지킨 것은 하나님의 뜻을 ‘최소한’ 이룬 것입니다. 그는 이웃에 대한 율법적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고 장담했지만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랑에 있어서 최소한에 만족하고 안주 했다는 뜻입니다. 그 문제를 알아 보신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그러자 그 사람은 근심을 하면서 떠나갑니다.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최소한의 율법적 의에 대한 그의 헛된 믿음을 허물어뜨리십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4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놀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25절)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한 사람의 부의 분량은 곧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일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26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전하십니다. 구원 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따낼 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선물’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를 쌓아 하나님의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고 자신을 너무 높이 본 까닭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용서 받은 자가 용서하듯, 은혜 받은 자는 은혜를 베풉니다. 그는 더 이상 율법의 ‘최소한’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능력을 따라 ‘최대한’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기에 재산 축적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움켜 잡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아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빈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받겠습니까?”(27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인자로서 온 세상에 대한 왕권을 가지고 올 때 새로 형성된 새 이스라엘을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위하여”(29절)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희생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넉넉하고도 영원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 부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이 땅에서 부자가 하나님 앞에 거지로 드러나고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부자로 드러날 것입니다(30절). 그 영원한 나라를 알고 믿는다면, 이 땅에서 물질에서 자유해지고, 그렇기에 신실한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거룩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묵상: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들어오면 마치 누룩이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결혼 관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어린 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태도에도 하나님 나라의 누룩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누룩은 물질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물질적인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부의 규모가 그 사람의 의의 분량과 비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거대한 부를 일구고 그것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충격 요법을 사용하십니다. 가진 물질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정도의 충격적인 도전이 아니고는 그의 공고한 자기의를 허물어뜨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청년은 “근심을 하면서”(22절) 떠나 갔습니다. 이 도전은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충격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가진 것을 다 팔아 없애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청년에게 이렇게 요구한 것은 그에게 그런 도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태도입니다.  

구원 즉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의를 쌓아서 얻어낼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우리 안에 살아 있어서 누룩처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들어가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변화의 증거가 물질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드러나야 합니다.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내 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은 온전히 인정 되고 있는지? 그 고백처럼 부를 사용하고 있는지?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5 thoughts on “마태복음 19장 16-30절: 하나님 나라와 물질

  1. 오늘은 부와 계명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과 은혜가 무엇인지 상관 관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봅나다, 10 계명 조차 못 지키는 우리에게 그 계명을 물론이거니와 너의 모든 것을 내 놓고 하나님을 따르는 말씀앞에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있나 반성해 봅니다, 하지만 나의 착한 행동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내 믿음을 점검해 봅니다.
    하늘 나라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끌려 드러가는 은혜에 기대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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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21절 말씀에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런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 는 말씀을 받아 들고 쩔쩔 맬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 사는 모습과 달라도 아주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권면 정도가 아니라 명령으로 들립니다. 그만큼 충격적입니다.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주정부 명령을 따라 각자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주어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비책을 살 수 없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입니다.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지 않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각자 살아남는 데 전념해야 하는 시간을 맞으니 함께 살아남는 일을 도모하며 살지 못한 시간들이 부끄러워집니다. 너그럽지 못한 마음,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시간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따를 준비 조차 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라 산다고 착각했던 자신을 봅니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니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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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하루입니다. 내가 생각하던 몸이 완전하지 않음을…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경험하고 고백하는 하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특별히 감기증상으로 인해서 심신이 힘이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두려움이 사로잡힙니다. 주님의 은혜와 치유하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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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님의 질문에 모든것을 지켰다는 부자 청년의 대답에 의심이 갑니다. 아마도
    착각을하고 살고 있었을것 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자든지 가난한자든지 귀족이든지
    비천한 자든지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것 보다 어려운것 뿐만아니라 절대적으로 불가능 함을 고백 합니다.
    오직 십자가 은혜의 길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이웃과함께 주님뒤를 따르는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그것이 살 길이고 축복 임을 깨닫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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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돈이 지금처럼 활용되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 사이에 신용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돈 없이 외상으로 부탁을 할 때는 미래에 상대방을 위해 그 값을 치르겠다고 하는거죠. 믿을 만한 사람이 물어보면 그 부탁을 들어주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 청년은 그걸 할 수 없어 예수님 따르는 걸 포기합니다. 그 이유는 그 청년이 가진 능력과 건강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혹시 굶어서 죽을까 하는 걱정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청년이 누릴 수 있는 편함과 안정을 포기하는 거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여파가 참 무섭습니다. 매일 주가가 폭락하고 비즈니스는 문을 닫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들은 폭증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거대한 경제적 손실이 몇주가 아니라 몇년이 계속될거라 예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모두 연약한 이 시기에 서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나만 잘 살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견뎌낼 수 있는지를 쫓으라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도와 견디어 내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선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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