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1-27절: 영적 체험의 의미

해설:

그로부터 엿새 후에 예수님은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더 북쪽으로 가셔서 어느 산에 이르십니다(1절). 그리고는 세 제자만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분은 특별한 상황에서 세 제자만 따로 부르셨습니다. 사안이 그만큼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산에 오르실 때는 주로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를 기도했을까. 한 순간,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입니다(2절).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홀연히 나타나 그분과 대화를 나눕니다(3절). 그 순간 그곳은 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 분을 위해 초막을 짓겠다고 말합니다(4절).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세 사람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5절). 구름 속에서 들린 하나님 말씀에 그들이 두려워 땅에 엎드려 있을 때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갑니다(6-7절).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고 산을 내려 오시면서 당신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9절). 부활로써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 보기 전에는 이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 제자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러자 의문이 듭니다.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라고 답하십니다(10-13절).

예수님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홉 제자와 무리들을 다시 만나십니다. 그 때 귀신에 사로잡혀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을 둔 사람이 예수께 와서 고쳐 주시기를 청합니다(14-15절). 예수님이 산 위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부탁했는데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16절). 그러자 예수님은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17절)라고 탄식하십니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두고 하신 탄식입니다. 그분은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신 다음 고쳐 주십니다(18절).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느냐고 여쭙니다(19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20절). 믿음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중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능력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그 능력에 나를 접속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갈릴리로 돌아 오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암울한 사건에 대해 다시 예고하십니다(22절). 예수님은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그는…그를…그가…”라고 말씀하십니다(23절).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에만 붙들린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가 죽임을 당한다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렀음 때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24절). 성인 유대인은 한 해에 반 세겔(성인 노동자의 이틀 품삯)의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따지자 베드로가 그렇지 않다고 우깁니다(25절). 집에 도착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왕이 자녀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25-26절). 하지만 그런 일로 쓸 데 없는 잡음을 만들 이유가 없으니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27절).  

묵상:

하나님은 때로 당신이 계시다는 사실을 신비한 방법으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특별한 방법으로 불쑥불쑥 보여 주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 제자가 경험한 것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시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일상 속에서 우연같은 사건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믿음이란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알아 보고 그분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황홀경을 사모하고 추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의 초점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체험을 주신다면 그것도 역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따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홀한 체험 한 번 없었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체험은 우리에게 필요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 뿐입니다.

5 thoughts on “마태복음 17장 1-27절: 영적 체험의 의미

  1.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온 세상이 멈추어 선 거 같이 조용하고 한가해 졌는데 불과 며칠 전만해도 이렇게 닥쳐 오리라고 미쳐 생각을 못 했지만 지금의 불안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혜아려 봅니다, 우리가 감히 짐작도 못하는 사건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터득하는 혜안을 주시고 거기애 걸맞는 믿음으로 극복하는 인내력을 간구합니다.
    제자들이 자만에 빠져 간질 병을 못 고쳐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하듯 일상에서 믿음이 부족함을 고백하고 주님의 손길에 의지하니 불쌍이 여겨주십시요..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을 잘 못 받아들이듯 내 안에도 그런 의심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고백하며 곧 오는 부활절을 믿음으로 마지하며 하늘의 영광을 보며 지금의 비상 상태에서 풀려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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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감사하게도 공부를 끝내고 직업을 큰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새 직장을 통해 제가 올바른 길을 온전히 가게 해달라고. 첫 직장을 위해 미국으로 내려올때도 어떻게 하면 맡은 학생들을 선한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개월 뒤에 저의 마음은 커리어 쌓아올리기로 가득했습니다. 

    본문에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감격해 여기다 초막을 짓고 살자고 합니다. 너무나 신비롭기도 했고. 말로만 듣고 존경하던 모세와 엘리야를 봤으니 같이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였을 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누히 가르치시던 밖으로 이웃과의 사귐을 잊었습니다. 

    찬양과 기도중에 감격도 하며 한없는 따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은 오랫 동안 우리를 예배로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감동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밖에서 이웃과 교제하며 즐겁고 어려운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게 비록 상처와 아픔을 가져와 질더라도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특히 어려워 하십니다. 이런 어려움을 우리 교회안과 밖에서도 나눴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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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짧은 시간 이었지만 찬양과 예배를 통해 주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체험 했습니다, 곧 잊고
    다시 두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근신하며 말씀에 몰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모든 행함과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순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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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산 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이 변화하시는 광경을 목격하는 사이에 산 아래에서는 불에도 뛰어들고 물에도 뛰어드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체험을 하는 제자들이 한 쪽에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발작하는 아이를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뒤틀어진 세대여! No sense of God! No focus to your lives! 라고 메시지 성경이 해석하는 예수님의 탄식은 한탄은 아이를 못 고치는 제자들 뿐 아니라 산 위에 천막 세 개를 세우겠다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해 하나님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때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앞의 본문에서 베드로는 주님이 살아계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자신 있고 멋지게, 확신에 찬 선언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해도 자기는 예수님이 주님이시기에 믿고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나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나의 굳은 의지가, 신념이, 믿음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즐거운 확신입니다. 스스로를 개라고 인정하며 예수님의 처분 만을 바라던 여인에게는 이런 확신이 없었습니다. 매달림, 간절함, 비어있음…그런 여인에게서 예수님은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묵상합니다. 큰 믿음, 굳센 믿음, 변치 않는 믿음을 원하는 세대에게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을 요구하십니다. 오병이어 스토리도, 반죽을 크게 만드는 누룩의 예도 작은 것이 큰 것을 감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음 속 가득한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살펴보는 사순절입니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운 공포와 불안의 거품이 걷히고 겨자씨 한 알로 다시 시작하는 날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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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늘의 말씀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보시고 꾸짖으시며, 제자들이 귀신을 내쫒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아직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아서 그렇다” (메세지번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체험으로 인해서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댓가를 원하는 관계인지? 나의 전심을 다해서 사랑하며 소통하고 있는 관계인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내 몸으로 체화되어서 삶에서 그 관계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미 온 엘리야 (세례요한)를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내 삶에 온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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