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1-12절: 내 안에 있는 누룩

해설:

‘바리새파’는 유대교의 평신도들 사이에서 형성된 갱신 운동이었고,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의 결사체였습니다. 두 파는 마치 공화당과 민주당만큼이나 서로 달랐고 그로 인해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두 파가 예수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공동의 적을 위해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넣을 구실을 찾았습니다(1절).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1절)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렇게 도발적이고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할 만한 자격이 있다면 기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입증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일기는 예견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3절). 그분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4절)라고 규정하십니다. 여기서의 음란은 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나의 표징”(4절)이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돌아 오셨는데, 제자들은 음식 챙겨 오는 것을 잊었습니다(5절).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라”(6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파는 빵을 사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러면 집에서 만든 빵을 가져 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7절). 이를 두고 제자들이 걱정하자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의 기적’에 대해 상기시키십니다(8-10절).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도 빵 문제로 염려하고 있었으니, 예수께서 그들을 “믿음이 적은 사람들”(8절)이라고 부르실 만합니다. 예수님은 먹을 빵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 즉 위선과 허위와 교만과 불신의 원인인 죄 된 욕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11절). 

묵상: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3:33).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의 다스림은 비록 작고 보이지 않아도 삶 전체를 변화 시키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작고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랑은 누룩처럼 번져서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말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그 사랑 안에서 경험하는 평화는 누룩처럼 번져서 우리의 눈빛과 표정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로 전염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죄 된 욕망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그 욕망은 누룩처럼 번져서 그들의 말과 행실, 눈빛과 표정을 결정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죄 된 욕망의 표현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위선과 허위와 교만과 불신의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겉으로는 믿음 좋은 사람들처럼 보이나 내면은 욕망 덩어리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무엇을 행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어떤 누룩을 품느냐의 문제입니다. 외형적으로 행하는 모든 경건의 모양(예배, 기도, 말씀 묵상, 사랑의 실천 등)은 거룩한 누룩을 품고 그 누룩이 삶 전체로 퍼져 나가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로 퍼져 나가게 하자는 노력입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16장 1-12절: 내 안에 있는 누룩

  1. 하늘 나라의 누룩과 위선자들의 누룩을 비교 설명하시며 우리 안에서는 하늘나라의 누룩으로 변화되어 가라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즉 믿음이 내 안에 누룩같이 변화를 이루어 나가면 끝내는 행위로 나타 총체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돼라고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그 동안 얼마만큼 변화되어가고 있나 돌아 봅니다.
    위선과 허위와 교만과 불신의 원인인 죄 된 욕망이 아직도 내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고백하며 매일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정화되기를 간구합니다.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하루가 되어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미소로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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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재난이나 질병을 하늘로 부터 온 징표로 받아 들이는 것은 오래된 습관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같다면 혼란이 없겠지만 위기에 대한 반응 속도가 개인마다 다르고 질병을 이해하는 지식이 다 같지 않으니 한마음으로 질서있게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녁과 아침에 하늘을 보고 기상을 예축할 줄 아는 인간들이 어째 시대의 증거를 구별 못하느냐고 예수님이 꾸짖으십니다. 증거를 보여 달라는 요구 자체가 올무를 씌우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을 예수님이 모를리 없습니다. 표징을 연구하고 시대의 증거를 분석하는 일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떠올리면 사람은 늘 자기보다 크고 위대한 어떤 섭리가 있다고 믿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팬데믹 같은)과 마주하면 사람의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어떤 힘의 작용이라고 생각하고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두 종교 그룹에 관한 짧은 본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주의해 듣고 잘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는 어떤 가르침, 어떤 지도자들의 누룩을 놓고 하시는 말씀일까요. 재난을 당하고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심판인가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이 회개와 자기 성찰로 이어지면 괴로움 중에도 유익을 얻겠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의 티끌을 보는 식이 되면 약자에 대한 소외와 편견만 점점 늘어날 뿐입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지금의 위기 상황이 지나고 다시 교회 문이 열리고 학교에서 아이들 웃음 소리가 들릴 때, 거리로 사람들이 나오고 서로 반갑게 악수하며 포옹하는 날이 올 때 그때 나는 지금의 나보다 믿음의 키가 조금 자랐을까…타인을 보는 눈매가 조금 선해졌을까…부활의 증거 외에는 받을 것이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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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래전 말씀을 통해 주님의 표징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통해 매일 아침 영의 만나를
    먹습니다 만 겉 모양에 회칠을 하는 무덤같습니다. 보혈로 내용도 정결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것을 주관 하시는 주님, 코로나 사태를 허락하신것도 주님의 섭리
    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코로나 사태를 통해 겉 모양과 내면이 이웃과함께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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