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21-39절: 멈출 수 없다

해설:

이번에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21절). 이곳은 이방 땅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이방땅과 이방인은 부정하게 만드는 ‘언터처블’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침없이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가십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여인”(22절)을 만납니다. 가나안 사람은 팔레스타인에 원래 거주하던 토착민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에 정착한 이후 그들로부터 무시와 천대와 박해를 받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귀신들린 딸을 치유해 달라고 청합니다(22절). 예수님은 한 동안 그 여자의 청을 무시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이 응할 때까지 간청을 합니다(23절). 보다 못한 제자들이 개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무도 냉담하게 “나는 오직 이스라엘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24절)라고 답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본심이었다면 이방땅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제자들에게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6절)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하며 경멸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27절)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은 무슨 수모를 당해도 자식만은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봅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은 그 여인을 칭찬하시고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28절)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호수 근처로 돌아 오십니다. 여전히 이방 땅에 계십니다. 그분은 호수 근처에 있는 산에 올라 가셨고 사람들은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29-31절). 그들은 그곳에서 사흘을 지냅니다(32절). 그 사이에 그들이 가져 온 식량은 다 떨어졌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남은 음식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 보니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밖에 없었습니다(34절).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들고 감사 기도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줍니다. 놀랍게도 이번에도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남자만 4천명 정도였습니다. 

묵상: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여 보내시면서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 사람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오히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마 10:5-6)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마치 예수님이 유대인들만을 위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처음 전도 사역을 시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때가 되면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야 하겠지만,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주신 말씀도 역시 당신의 사명을 유대인들에게만 국한하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분이 굳이 이방 땅에 들어가실 이유가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은 갈릴리에서 유대인들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갈릴리 호수 동편 이방 땅에서 행하십니다. 당신의 사명이 모든 족속, 모든 민족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8)고 말씀하심으로 본격적으로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된 것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으로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저절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 변화 받은 사람들이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게 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맛보았다면, 그 은혜가 내 안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15장 21-39절: 멈출 수 없다

  1. 가나안 여인 같이 자신이 한없이 낯아질 때 주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면서 나를 개에 비유한다면 그 이방 여자같이 굴욕적으로 낯아 질수 있나 생각하며 믿음의 깊이를 가늠해 봅니다.
    지속적으로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가르치며 병을 고쳐주시고 또 먹을 음식을 나누어주시는 주님의 선교활동을 통해 그 동안 무시당했던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종종 배타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주님의 참된 사랑안에 모든 민족을 포괄하시는 주님을 경배하며 그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Like

  2. 예기치 않은 곳에서 믿음의 본을 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 그것도 온전한 사람 값을 쳐주지 않는 여자에게서 간절한 믿음의 결실을 봅니다. “개라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자기 딸을 살리려는 마음 하나로 매몰찬 냉대를 참으며 매달리는 모습도 놀라운데 오늘 아침에는 여자의 이 답변을 따라 하지도 못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봅니다. 유대인의 선민 사상을 쉽게 비난해 왔지만 내 안에 있는 교만함은 다스리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나 스스로를 개라고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에도 수 십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하지만 한 번도 이 여인 같이 분명하게 “개에게도 주인의 은혜가 돌아오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를 아끼고 존중할 때 심신이 건강해지고 타인과의 관계도 바람직하게 풀린다는 뜻으로 말하는 자존감과 별개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과연 여인과 같은 순종과 항복이 심중에 있는가…아닙니다. 하나님의 딸, 백성, 사랑받는 자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 사람…구원의 기쁨 속에서 다시 발견한 나 인것은 분명하지만 이 아침에는 부끄러운 마음이 더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풍성한 식탁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교만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Like

  3. 개 보다도 더못난 생각과 행동을 한적이 많았습니다. 적어도 대부분의 개들은 주인을 알고
    주인을 따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나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니 그 은혜는
    도저히 갚을수가 없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치유하시고 넉넉히 먹이신 다음 일곱 이방족속을
    일곱광주리로 축복 하시는 주님은 진정 만왕의 왕, 만유의 주 이십니다.
    코로나 사태로 공동 예배를 드릴수 없지만 생각과 언어와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Leave a Reply to ymkim Cancel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