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1-21절: 땅에 임한 하나님,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해설:

예수님 활동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대왕의 아들 중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봉 왕’(1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헤롯에게까지 미쳤고, 헤롯은 자신이 죽게 한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목하기 시작합니다(2절). 

헤롯 안티파스는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는 부도덕한 일을 행했습니다(3-4절). 세례 요한은 그 일을 드러내 놓고 비판했고, 헤롯은 세례 요한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그를 감금시켰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는 군중이 두려워 그를 처형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5절). 그것을 못마땅히 여긴 헤로디아가 딸을 시켜 세례 요한을 살해하도록 헤롯을 몰아 세웁니다(6-11절). 이런 일로 인해 헤롯은 하나님의 사람을 해한 것에 대한 후환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 두려움이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적의를 품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외딴 곳으로 잠시 몸을 피하십니다(13절). 하지만 사람들은 곧 그분에 대한 소식을 듣고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끼니를 해결하도록 사람들을 해산 시키자고 제안합니다(15절).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6절)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것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고 제자들은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19절). 어찌된 일인지, 제자들의 손에 들린 음식은 고갈되지 않았고, 순식간에 빈 들은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마치 하늘 나라가 그곳에 잠시 내려 앉은 것 같았습니다. 

다 먹고 나서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20절).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수는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해도 오천 명 쯤 되었습니다(21절). 

묵상:

빈 들에 모인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도 망각합니다. 그분이 들려 주시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활동하고 계신 분처럼 보였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빈 들에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던 무리는 대부분 이 땅에서는 별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심으로 이 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제자들은 “무리를 헤쳐 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15절)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땅의 나라는 ‘각자도생’의 나라입니다. 다 제각기 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6절)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불어 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들로서는 계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무리에게 그 음식은 너무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두 흩어 보내자고 했을 것입니다. 땅의 나라는 또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자 계산으로는 어림도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었던 사건을 닮았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하게 될 잔치를 생각나게 합니다. 장차 메시아의 나라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그 한 일면을 경험하게 해 준 사건입니다. 

5 thoughts on “마태복음 14장 1-21절: 땅에 임한 하나님,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1.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의 믿음을 5병 2어의 기적을 통해 가늠히시는 주님과 끝내는 주님을 따라 음식을 나누어 주는 제자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늘 따라 다니는 미흡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자연과학으로 평생을 살아온 바탕에서 모든 개념이 수학적 논리에 어긋나면 받아들이지 못 하는 평상심으로 기적을 거부하는 내 자신을 살펴봅니다.
    계산보다는 믿음이 앞서서 오늘도 하늘나라를 체험하는 일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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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실천하는 지혜를 원합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늘나라를 이땅에서 교회를 통해 누리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이웃과함께 오병일어를 바치는 어린이같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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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악을 과감하게 지적하는 용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고 의뢰하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나라를 이땅에서 교회를 통해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몇 조각의 빵과 물고기를 이웃과함께 바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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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록은 비유와 기적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은 사람에게는 기적 사건들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목수 요셉의 아들에게서 로마로 부터 구해줄 구세주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믿기지 않고 사기와 눈가림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매장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스토리 전체를 아는 우리에게 기적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루어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기적처럼,” “기적 같은” 등의 표현을 아껴서 쓰는 사람이라도 우연하게,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이 해결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신비를 경험하면서도 신비인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멋지게 빚어진 도자기를 앞에 놓고 그 형태와 빛깔, 빚은 이의 창의성과 솜씨를 감상하는 것과, 도자기에 관한 일지, 예를 들면 흙은 어디서 어떤 것을 샀으며 언제부터 몇 시간 동안 빚고, 염료는 어디서 구하고 어떤 비율로 섞었으며 그 가마에서 제대로 구워진 도자기는 몇 개나 나왔는지…등등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오병이어”에 초점을 맞추면 기적인지 마술인지 분간하는데 시간이 다 갑니다. 눈 먼 이를 고쳐주신 이야기를 읽을 때는 어떻게 고치셨는지 묻지 않고 지나갑니다. 혈루병 여인이 옷자락을 만지자 하혈이 멈추었다는 구절을 읽을 때도 무슨 이런 일이!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고,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의 눈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스토리는 투수가 커브볼을 던지는 것과 흡사합니다. 스토리 안에 한 층이 더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모인 무리는 예수님의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예수님의 임재를 맛보고 있습니다. 빵이 한 개만 있었어도, 생선이 두 마리 뿐이었어도, 오천 명보다 더 많았어도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은 배가 불렀을 것입니다. 게다가 거기 모인 사람들은 한 끼 배불리 먹고 싶어 예수님께 간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래된 질병, 마음의 괴로움, 메마른 영혼…예수님에 관한 소문 중에 “밥도 준다더라”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저녁 끼니를 해결한 얘기가 이 스토리의 중심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경험한 사람들, 너와 내가 맛보고도 열두 바구니에 또 가득한 풍성한 은혜, 사람의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으로 여는 보물창고…신비를 신비로 볼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누리는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답게 여길 줄 아는 눈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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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미국 민주당 경선이 막바지에 다르고 있습니다. 중도의 바이든과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센더스와 겨루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대표로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댓글공방이 한창입니다. 

    본문에 헤롯왕은 세례요한을 싫어했지만 그를 처치하면 민심을 잃을까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에 이끌리어 아픈자들을 치료하시고 수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도 헤롯왕이 자신을 해치러 한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자신의 이익보다 자신의 미션수행을 위해 움직이셨습니다. 

    11월 선거가 다가오면서 우리 마음은 더욱 동요하는 거 같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적이라 생각하고 공존하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헌법이 제시하는 가치는 뒷전이고 그저 이기기 위한 정치가 주류가 된게 참 안타깝습니다. 제 마음안에 니편 내편이 아니라 옳고 그른 거를 분별케 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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