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44-53절: 하늘 나라의 절대적 가치

해설:

이어서 예수님은 밭에 숨겨 놓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을 비유로 듭니다(44절). 은행 제도가 아직 발전되어 있지 않던 당시에 사람들은 돈이나 보물을 땅에 숨겨 두곤 했습니다. 숨겨놓은 사람이 그 사실을 잊거나 갑자기 죽을 경우, 그 보물은 그대로 땅에 묻혀 있게 됩니다. 그렇게 숨겨 두고 잊혀진 보물을 누가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은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땅을 삽니다. 그러면 그 보물도 그 사람의 소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어떤 보석상의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하십니다(45-46절). 좋은 진주를 찾아 다니던 보석상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귀한 보석을 발견합니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보석상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헐값에 그 진주를 구입합니다. 

두 경우 모두 비윤리적인 행동입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주인에게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고 그 진주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를 제대로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윤리나 처세술을 가르치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 바꿀만큼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 이야기를 비유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물로 고기를 잡아 올리는 비유(47-50절)를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다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어울려 살고 있지만 마지막 날이 되면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초점에 있어서 가라지의 비유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 나라를 위해 훈련받은 율법학자”(52절)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배우고 실천할 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를 보고 그 나라를 배우고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자의 과제입니다. 그러려면 옛 가르침(“낡은 것” 즉 율법)과 새로운 계시(“새 것” 즉 예수님의 가르침)를 이해하고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으로 가십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가시자, 회당장이 예수님에게 설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분이 설교를 하자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이 알던 예수에게서 그토록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54-56절). 그들은 선입견을 내려 놓고 예수님께 마음을 열어야 했으나, 오히려 선입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그들의 생각이 예수님을 몰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동네에서는 온갖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했는데,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묵상: 

하나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아니, 그 나라는 환히 열려 있는데, 우리의 영성이 흐려져 있어서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항상 우리 안에 있고 곁에 있으며 위에 있고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다스림 안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 나라를 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우연히 보기도 하고, 보석상처럼 영원하고 절대적인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찾다가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볼 눈”이 있어야 그 가치를 알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것을 알아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물질과 육신을 전부로 알고 살아 왔는데, 하나님 나라를 보고 나니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이 희망의 전부였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는데,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그 생명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됩니다. 그렇게 세계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면 세상을 사는 방법도 바뀝니다. 그것이 “하늘 나라를 위해 훈련받은 율법학자”가 사는 방법입니다. 

4 thoughts on “마태복음 13장 44-53절: 하늘 나라의 절대적 가치

  1. 다양한 비유로 하늘나라를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며 예나 지금이나 하늘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닭게 됩니다.
    특히 선입견을 갖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식견이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슴을 고백합니다.
    진정한 하늘 나라를 작금의 현실에서 발견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며 끝내는 영생으로 이어지는 축복을 받아들이고 즐거움과 희망을 함께 갖고 믿음 생활을 옳게 하기를 간구합니다.
    옛것과 새 것을 동시에 소중이 여기며 그 안에서 있는 생명의 활력소가 내 하루가의 일과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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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느 미국 감리교회 정문에 수난절을 알리는 배너가 걸렸는데 “re-lent” 라고만 쓰여 있습니다. 해마다 오는 렌트 시즌을 알리는 뜻에서 “re”를 붙였나보다 하고 지나치다 relent 라는 단어 자체의 뜻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relent 는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만든다, 날씨가 누그러진다는 뜻이 있고 이 단어에 less를 붙여 relentless, relentlessly 라고 만들면 쉬지 않고, 끊임없이 등 강한 의지를 표현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됩니다. 이 relentless를 해체해 기본이 되는 relent 라는 단어만 꺼내 놓으니 놀랍게도 수난절 렌트 시즌의 정신이 오롯이 드러납니다. 사순절은 중단없는 전진을 하는 때가 아니라 멈추어 서는 때, 엄격하게 몰아 붙일 때가 아니라 양보하고 포기하는 때입니다. 내가 의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연하게 만들어 좀 더 의존적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때가 렌트 시즌입니다. 평소에 알던 목수의 아들로 예수님을 보는 나사렛 사람처럼 되지 말고 “이런 모든 것을 어디서 터득했을까 (56절)” 궁금해서라도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는 사람이 되는 때가 수난절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굳어질대로 굳어진 것을 고치려니 힘이 듭니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려해도 내어줄 공간이 별로 없습니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가당키나 한 말인가… 부드러운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자기보호의 갑옷을 내려놓는 때가 수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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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최근 아프리카에서 메뚜기 사태로 많은 농작물 피해를 입은 뉴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의 소식을 듣고 마치 출애굽기 에서 경고하시는 주님을 연상합니다.
    모든죄를 회개하고 근신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을바로 아는, 영적인 생각과 눈과 귀와 마음을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의
    이름과 부활을 증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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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난 2주동안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며 내려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전역에 빠르게 퍼지면서 그 공포심에 너도나도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들도 이번 주가폭락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재산을 주식에 몰빵했었다면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진 모든것을 걸고 얻을만한 보물이라 했습니다. 군중들이 알기 쉽게 땅에 묻힌 보물과 진귀한 진주로 비유했습니다. 그걸 얻기 위해 가진 모든걸 다 팔아서 얻어야 한다고 얘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적당히 투자해서 얻는게 아니라 올인해서 얻는거죠. 자신의 삶 모두를 걸어야 된다고 알려줍니다.

    보통 투자 전문가들은 분산투자를 권장합니다. 주식채권 현금 중 한 곳에 올인하지 말고 때에 따라 나눠서 투자하라고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우리 삶 전체를 바치라 하십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 마음과 영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주가가 요동치고 코로나바이라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마음이 혼란합니다. 제 앞가림을 어떻게 할지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이득을 볼까 고민까지 합니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세속에 물든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계셔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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