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24-43절: 악의 현실 속에서

해설:

예수님은 이어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24-30절)를 말씀하시고 후에 비유에 대한 해석(36-43절)을 주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가꾸시는 밀밭과 같습니다. 농부는 밭을 일구고 밀알을 뿌려 놓았는데, 밀이 자라고 보니 군데군데 가라지가 끼어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밀밭을 자주 살피면서 가라지가 보이는 대로 뽑아 줍니다. 가라지는 생장력이 밀보다 강하여 그대로 두면 곁에 있는 밀이 제대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주인공은 종에게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합니다(29절). 가라지를 뽑다가 곁에 있는 밀까지 상할 수 있으니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합니다(30절).

이어서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31-32절)와 ‘누룩의 비유'(33절)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합니다. 겨자씨는 당시 보통 유대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땅에 심기면 큰 나무로 자랍니다. 또한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어 두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온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다스림도 작고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 부드러운 힘에 자신을 맡기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마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시편 78편 2절을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 그동안 감추어져 온 비밀을 쏟아 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묵상:

‘악의 문제’는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수 많은 종교적 천재들이 붙들고 씨름해 온 문제입니다만 아직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 있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서 종이 제기한 질문 즉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27절)라는 질문은 악의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악의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물어 오는 질문이 이 문제이고, 믿는 사람에게도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선한 피조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은 그 악을 그대로 두고 보시는가?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날까지 악의 현실을 허용 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랄 일은 이 세상에서 모든 악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살면서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악과 악인들을 당장 제거하지 않으시는가?”라는 의문이 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모든 악인들을 제거 하신다면 과연 나는 남아 있게 될까?” 밀과 가라지는 처음부터 종류가 다른 것이지만, 의인과 악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의 악인이 내일 의인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의인이 내일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인들을 당장 제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우유부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려는 ‘사랑의 미련’을 의미합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13장 24-43절: 악의 현실 속에서

  1. 믿음 새활을 하면서 의문중의 하나인 옳지 못 한 일들과 나쁜 사람들이 만연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 속에 악은 악에서 나오며 선만이 하니님께서 나온다는 말씀을 상고해 봅니다.
    끝내는 모든 악들을 걸러내고 주님의 자녀들만을 거두어 주신다는 말씀앞에 혹 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함써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언젠가는 예수님이 오셔서 추수 할 그날이 오리라 믿고 누룩에 물들지 않고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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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죄인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무죄인 사람을 감옥에 넣는 것보다 낫다는 전제가 떠오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실수와 사고는 늘 일어나기에 무죄인 사람이 형을 받아 수감되는 일도 생기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유유히 법정을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 비유를 읽으면서 나는 밀이라고 확신하다가도 열매를 맺지 않는 인생은 가라지와 다를 바 없는 쭉정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기생충이 그리는 사회의 질서는 복잡하고 단단한 뿌리를 가졌기에 간단한 설명으로 지나갈 주제는 아니지만 기본 개념만 보면 가라지는 밀 옆에 기생하는 생명체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가라지는 그저 “기생충”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빗대어 좋은 씨와 겨자씨, 누룩을 말씀합니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면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커다란 나무가 되는 비쥬얼을 떠올리면 “성공” “부귀” “명성” 같은 단어가 연상되지만 씨앗에서 나무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인내, 연단과 돌봄을 생각하면 새 한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 수 있는 나무로 자란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다 좋은 것을 원하고, 좋을 것을 내어 주고 싶어합니다. 선이 늘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때가 되면” 선이 이기는 것을 믿고 삽니다. 앞에서 여러 밭의 비유에서도 그랬고, 오늘 가라지와 밀을 묵상하면서도 또 한 번 품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여러 번 다시 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엄마가 잘 쓰던 표현에 “애들은 여러번 다시 된다”가 있습니다. 자라면서 바뀌고 달라진다는 소망을 담은 표현입니다. 추수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배웁니다. 인내와 용서, 세컨드 챈스와 돌아옴의 가치를 배웁니다. 회개와 회복을 기도하고, 자비와 관용을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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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포영화에 악령 때문에 잠을 못 잤던 일이 생각납니다. 나에게도 귀신이 나타나 나를 끔찍하게 해할까 자신을 이불 안에 덮고 지나가기를 바랬습니다. 어느세 나이가 들어 귀신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하고 사람들이 벌이는 악행을 보며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은 선보다 악에 영향 받기 쉬운거 같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본성은 악령이 지배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법 안에서 개인의 좁은 이익을 추구하는 걸 장려합니다. 더 나아가서 권력을 가지게 되면 법 위에 올라서서 자신의 이익을 전체의 이익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권력자들의 악행에 대항해 총칼을 들고 싸우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엔 일방적으로 당할 거를 알고 대항합니다. 1919년 3월1일 운동이 그랬습니다. 일제가 탄압할 거를 알았지만 전국에서 여러 국민들이 깃발을 들고 나와 독립을 외쳤습니다. 비록 일제는 1945년까지 계속 되었지만 31운동의 정신은 대한민국헌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악에 대항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건 첫번째도 십자가고 마지막도 십자가입니다. 저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사회에 불의에 대항하지만 그게 저 자신의 힘으로 박멸할 수 없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잘났어도 온전하지 않기에. 저의 작은 행동이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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