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1-21절: 고난의 종으로 오신 메시아

해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십계명 중 하나인 안식일 계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오늘 우리 달력으로는 토요일)에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세밀하게 규정하여 안식일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허기를 때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습니다(1절).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추수 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기에 문제를 제기합니다(2절). 율법주의적 사고 방식이 굳어지면 이처럼 작은 것을 두고도 문제를 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윗의 일화(삼상 21장)와 성전에서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에 관한 규정(민 28:9)을 예로 삼아 답하십니다. 

다윗의 일화를 예로 드신 것은 당신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입니다. 다윗왕이 안식일 율법에 저촉되지 않았다면 메시아이신 당신은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이 “성전보다 크신 이”(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는 안식일 율법이 면제됩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신 이요 영원한 성전이기 때문에 안식일 율법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8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다른 모든 인간적인 일들을 중지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높임 받으실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회당에 가십니다. 그 회당에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그분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10절)라고 묻습니다. 율법학자들의 규정에 의하면,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면 치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는 그를 앞으로 나오게 하여 치료해 주십니다. 당신에게 그럴만한 권한이 있음을 보인 것이고, 율법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것을 반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모의를 시작합니다(14절).

이 지점에서 마태는 이사야 42장 1-3절을 인용합니다(18-21절). 이것은 ‘고난의 종’의 노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통해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과 능력을 받으셨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선전하고 높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섬세한 사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섬기는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묵상: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어마어마한 주장을 하십니다. 당신이 1)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이며, 2) 성전보다 더 큰 존재이며, 3)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의 기준에서 보면 그분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주장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메시아는 우주적 권세를 입고 오실 분이며, 성전과 안식일은 그들이 가장 거룩하게 여겼던 대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며 성전보다 더 크고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모의한 것은 결코 지나친 반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에 매우 위험한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마태는 ‘고난의 종의 노래’ 중 하나를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메시아는 우주의 심판자로 오시지 않고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짊어질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이 사실 즉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색에서 메시아 다운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율법 위에 계시며 성전보다 크십니다. 그런 분이 자신을 낮추어 종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음이요, 능력을 찾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수치의 상징입니다.  

3 thoughts on “마태복음 12장 1-21절: 고난의 종으로 오신 메시아

  1.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 이시며 성전보다 더 크시며 안식일의 주인 공이신 예수님 앞에 섭니다,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치시며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이방 사람들에게 공의를 선포하시며 다투지 않고 시끄럽지 않으며 정의가 이길 때까지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이방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끝내는 십자가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손길이 숨쉬는 하루로 은총 내려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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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하신 일은 십계명을 위반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더더욱 문제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거의 다였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병이 들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크게 타격을 입습니다.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만큼 경제력이 없어지니 가난이 더 깊어집니다.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인데 가난한 사람에겐 더욱 시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을 없애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신 일은 생명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환기 시키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안식일을 지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아픈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반 감기 환자도 코로나 바이러스균을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의심하는 눈으로 보게 됩니다. 언론의 속성 상 뉴스거리가 없는 것보다 넘치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날이 갈수록 잦아 들지 않고 계속 기승을 부리는 이번 사태가 하루 속히 가라앉기를 기도합니다. 꺼져 가는 불꽃도 제 시간을 다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순하고 연하고 느리고 조용한 주님께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들을 올려 드립니다. 환자를 돌보고, 병균을 연구하고 약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올려 드립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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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일에도 예배만 드리는 교인이 되지말고 병든자와 함께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하나님임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세상을 향한 끝없는 주님의
    사랑을 알려 이방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먼저 모두가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고 이웃과함께
    주님뒤를 따르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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