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 16-42절: 제자로 사는 것

해설:

제자들을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16절)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니 그렇습니다. 물질을 전부로 알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전하는 것이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16절)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상황을 잘 분별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과 박해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17-18절).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예수님 자신이 하늘 나라의 복음으로 인해 오해와 박해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스승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제자로 나섰다는 사람들이 그런 운명을 피하리라고는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는 것도, 그 복음대로 사는 것도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는 미움과 배척과 무시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식구에게서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21-25절). 

제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제자로서 바로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사형통하고 모든 것이 평안할 때 제자는 오히려 긴장해야 합니다. 제자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제자는 어떤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제자의 몫이 아닙니다(26-31절). 제자는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 인정 받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32-33절).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습니다(34-39절).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하찮아지고, 그동안 진실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 거짓으로 보입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고 실천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만듭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며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하늘 나라를 통해 절대적인 것을 보았기에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상대화됩니다. 

그렇게 믿고 말하고 행동하기에 때로 믿지 않는 가족과 믿는 가족이 원수처럼 갈라지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여는 것은 이렇듯 처음에는 분열과 갈등을 불러 옵니다. 그것이 무서워서 예수님에게 등 돌리고 하나님 나라에 눈 감는 것은 돼지떼의 죽음을 보고 떠나가 달라고 했던 거라사 사람들의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모두가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뒤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또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 하라고 하십니다(40-42절). 보내신 분이 보냄 받은 사람을 끝까지 책임 지신다는 약속입니다. 

묵상:

제자가 되고 제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때로 불편과 손해와 거부와 무시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열고 그 나라를 믿고 그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그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대하고 거부하고 박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로 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하늘 나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있으며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안다면, 현세적인 불편과 손해와 박해 때문에 물러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살고 그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뒤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면 아무 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겸손히 그러나 담대히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며 또한 그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5 thoughts on “마태복음 10장 16-42절: 제자로 사는 것

  1. 제자들의 삶이 어떤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며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끝까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통해 현실에서 부디치는 많은 역경도 끝내는 주님이 해결 해 주실 것을 믿고 신실히 주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삶의 어려 굴곡에서 정말 하나님은 계신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악이 만연한 작금의 현실에 왜 눈을 감고 계신가? 의문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두려움으로 어수선 한 요즘 주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궁긍합니다.
    두려워 할 분을 두려워하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는 믿음으로 무장시켜 주시고 겸허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하루로 은혜내려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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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늘의 슬기와 깨끗함을 원 합니다. 좁고 험한 길을 걸어도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용감히 걷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끝까지 견디며 이웃과 더불어 주님의 사랑을
    이방인에게 소개하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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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말씀의 해설은 제 마음에 너무 나도 감동을 주는 아멘 입니다.”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과 박해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17-18절).” 금년 들어 두번 선교지를 방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열씸으로 제자를 만들어 내시는 선교사님을 보니 미흡한 나를 둘러 보게 됩니다. 한면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기뿜이 있음을 선교사님으로 부터 보니, 요한복음 15:11 생각 나네요. 위로가 되지요, “주여 도와 주소소”의 말이 계속 나오네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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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이 이렇게 다릅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고 세상 안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하늘의 사람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만 생각하면 세상이 가는 방향의 반대로 가야 맞을 것 같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공동체나 교주를 따라 컴뮨commune 을 만들어 사는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떨어져 사는 것이 답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런 삶인가…아닌 것 같습니다. 눈이 죄짓게 하면 눈을 빼 버리고,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손을 잘라 버리라는 말씀을 묵상했을 때처럼 오늘도 “말씀대로”가 아니라 말씀의 “뜻”을 묵상하게 됩니다. 삶의 경험이나 이해가 훨씬 부족했던 청년의 때에도 34절의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는 구절에 끌렸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신데, 평화를 만드는 사람 peacemaker로 살아야 할 크리스찬인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상황으로, 상징으로, 언어로, 현실로…..여러 방향에서 이 구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화두”라고 부를만한 구절입니다. 답은 없습니다 아직. 결론도 없습니다 아직. 삶의 한 시점에서 얻는 깨달음을 마음에 잘 새겨둘 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분의 칼은 또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피부병에 걸려 격리되어 살던 사람이 나서 깨끗해져서 마을로 돌아오게 되고, 12년 동안 하던 하혈이 멈추어 건강을 되찾은 여인이 맛보는 평화는 예수님이 주신 것 아닌가요. 예수님은 이들의 삶에서 병에 묶였던 세월을 칼로 베어내셨습니다. 평화도 주시고 칼도 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영광을 받으려고 나팔을 부는 사람은 이미 자기 상, 자기 몫의 평화를 다 받았으니 그런 사람이 새로운 존재로 빚어지려면 자기의 위선을 보고 잘라내는 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사랑하신 예수님. 그분의 사랑 안에는 보살핌이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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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자라는 말씀… 그 기준이 때로는 모호해 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준을 알더라도 그 기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인지, 내가 그 기준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과 너그러워지는 것의 경계는 어디인지, 바리새인과 제자의 경계는 어디인지,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맞는 것인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자로 살고 싶다” 라는 갈망만은 마음에 확실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도 묵상을 통해 한 번 더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보며 한 발 더 제자의 걸음을 내 딛여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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