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1-17절: 이분은 누구신가?

해설:

이방 땅에서 잠시 사역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자기 마을”(1절) 즉 가버나움으로 돌아 오십니다. 어떤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침상 째 그분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 받았다”(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 질병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들여다 보셨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율법학자들은 경악합니다. 죄 용서의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당신에게 인자로서 죄 용서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 하심으로(6절) 그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듭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세리 마태를 보시고 제자로 부르십니다(9절). 어부만큼이나 세리도 제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힘을 등에 업고 동족을 착취하는 것으로 인해 미움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찾아가셔서 제자로 부르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즉시로 따라 나섭니다. 마태에게도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갈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아 보시고 그를 부르십니다.

유대 문화권에서 자신의 식탁에 누군가를 초청하는 것은 그 사람을 환영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명망 높은 율법학자들은 높은 기준을 따라 자신의 식탁에 초청할 사람을 선별했습니다. 초청 받은 사람들의 면면이 초청한 사람의 수준을 보여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10절)을 당신의 식탁에 맞아 들이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12절)고 답하시면서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13절).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 눈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실제로는 금식을 했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6:16-18)에 따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을 혼인 잔치의 신랑이며 지금은 혼인 잔치를 즐길 때라고 대답하십니다(15절). 또한 그분은 옷 깁는 비유와 포도주 부대에 대한 비유(16-17절)를 사용하여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 보고 그것에 대해 응답 하라고 하십니다.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는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그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15절)인데, 그 때가 되면 금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묵상:

예수님은 파격적인 분이셨습니다. ‘격’이란 교리, 전통 혹은 관습 같은 틀을 말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 아래서 서로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정도에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만들어진 것이 전통이고 관습이며 교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틀 안에 머물러 사는 것이 안전하고 편안합니다. 그 틀을 벗어나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습니다.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주변에서 “네가 뭔데?” 혹은 “왜 그러는데?”라면서 위협해 옵니다. 그렇게 교리, 전통 혹은 관습은 굳어져 가고 그 틀 안에서 숨죽이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집니다.

예수님은 그런 틀에 가둘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으셨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셨습니다. 옳은 것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없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보통 사람들은 웬만하면 기존 틀 안에서 적응하고 사는 편을 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무엇이 옳은지를 분명히 하셨고, 그 믿음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랬기에 그분의 말과 행동은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의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충격과 의문은 “이분은 과연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불러 일으킵니다. 

도대체 이분은 누구신가? 우리에게도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그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마태복음 9장 1-17절: 이분은 누구신가?

  1.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불러 직업에 대한 차별을 파하시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당대의 문화를 격파하며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을 혼안 잔치 기간으로 설명하시며 오랜 잘 못 된 전통을 허물며 하나님으 뜻에 따라 혁명을 주도하시는 예수님을 마주 합니다, 그 예수님의 정체를 옳바로 깨닭고 마태와 같이 즉시 따르는 제자의 태도를 묵상합니다.
    잘 못 된 오랜 관행의 믿음의 형식에서 벗 어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신실 한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생배 조각을 낡은 옷에 깁거나 새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어리석음이 반복 되지 않고 형식보다는 신실 한 믿음의 자세로 주님 앞에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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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실로 주님은 세상의 죄를 용서하실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합니다.
    항상 주님안에 거하면서 영육간에 치유받고, 이웃과함께 제자의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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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을 보시는 주님. 그의 현재를 보시지 않고 회복된 내일을 보시는 주님.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여주시는 주님. 관습과 문화는 변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는 영원하다고 가르치시는 주님.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 주소서. 조용한 마음, 새 술을 담을만한 튼튼한 부대를 마음에 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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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960년대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철폐된지 100년이 지났어도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이 합법이었습니다. 이런 불의에 대항해 킹목사님은 여러 흑인 리더들과 인권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킹목사님은 편한 목사의 길을 택하지 않고 인권운동 재일 앞에서 행진하다 얻어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결국 39세 때 암살 당했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여러 관습과 율법의 선을 넘습니다. 남의 죄를 사하시고. 당시에 천대받는 이들과 식사를 하며. 형식적인 종교활동에 연연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우리 교인들에게 적용된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초자연적인 힘이 없지만 교회로 모여 성령님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여러 교회들은 법과 관습을 뛰어넘어 힘없고 굶주리고 아픈 이들을 구제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몸 닮고 있는 사귐의 교회도 100년 전에 한국에 오셨던 감리교 선교사님들과 교회와 이어져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아시아의 낮은 곳으로 선교사님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그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율법과 관습을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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