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18-34절: 도전하시는 예수님

해설:

이어서 마태는 예수님의 대화 한 토막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감동한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절)고 대답하십니다. ‘인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신 칭호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7장 13절의 예언과 관계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세상에 대한 영원한 통치권을 부여 받을 영원한 왕이 ‘인자’입니다. 그 영원한 통치자가 지금 이 땅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유랑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미래에 그분의 영원한 왕권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는 그분의 고된 운명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대화는 제자 중 하나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아버지의 부고를 듣습니다. 유대적인 관습에 따르면 부모의 장례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22절)고 말씀하십니다. 앞의 “죽은 사람”은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키고, 뒤의 “죽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은 무엇이 우선이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도록 깨우치십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 호수를 “바다”(24절)라고 불렀습니다. 바다처럼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에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갑작스러운 돌풍이 가끔 불어 닥쳤고 적어도 하루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돌풍이 불어 닥쳤고,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자 그분은 마치 사람에게 하듯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십니다(26절). 그러자 놀랍게도 바람과 바다가 즉시로 잔잔해집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자연 현상에까지 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경이감에 사로잡힙니다.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이방인의 지역에 들어 가십니다. 그 때 귀신들린 사람 둘을 만나십니다(28절). 그 만남도 역시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그 정체를 알아봅니다(29절). 그분의 권위로 인해 자신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감지한 귀신들은 이방인들이 그곳에 놓아 기르고 있던 돼지떼에게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짜낸 꾀였습니다만, 사태는 귀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귀신들의 돼지떼에게 옮겨 가자 돼지들이 발작을 일으켜 모두 호수에 빠져 죽습니다(32절).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에게는 귀신 들린 사람이 치유 받은 것도, 비범한 권위를 가진 예수님이 오신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이익이 더 중요했습니다. 

묵상: 

예수님은 그 존재 자체로 혹은 말씀과 행동으로 보고 듣는 이들을 도전하십니다. 그 존재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분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그분께 무릎 꿇든 돌아서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제대로 듣고 그분의 행적을 제대로 본다면 그분 앞에 항복하든 돌아서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분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마지막에 온 우주에 대한 통치권을 하나님께로부터 이양받아 다스리실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순간 가부간에 결정을 하라는 도전에 직면합니다.

제자로 따라 나서겠다던 율법학자는 예수님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해 달라고 청했던 제자는 예수님의 냉담해 보이는 말씀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카테고리에 예수님은 전혀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다라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들과 돼지떼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예수님께 그 동네를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분을 모셔 들임으로써 자신들에게 일어날 변화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제대로 보았느냐고.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겠느냐고. 내가 너희 삶에 일으킬 혼란과 변화를 감수할 용의가 있느냐고. 그것을 통과해야만 참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5 thoughts on “마태복음 8장 18-34절: 도전하시는 예수님

  1. 율법학자와 제자를 통해 주님의 정체성이 나타나며 또 바다의 풍랑을 꾸짖으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명령하시는 주님 앞에 섭니다, 만일 주님이 지금의 나를 보시면 무슨 말씀을 주실가 상상해 봅니다,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수가 있을까? 어떤 말씀을 주시면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를 수 있을 까? 아마 하버지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그 제자보다 더 구차한 변명을 하며 피했을 자신을 마주합니다.
    주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 그 권위를 받아 드리고 주시는 말씀을 따라 지속적인 삶의 변화를 구합니다, 주님께 복종하는 허루로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Like

  2. 오늘 본문의 사건들의 공통점은 동일한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다른 선택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묵상에서 나누셨듯이, 많은 이들이 예수님 앞에서 순종을 하든 혹은 떠나버리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기로 앞에 서있었습니다.
    편히 지낼수 있는 일류호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효와 예의, 무서운 광풍과 두려움, 돼지 때의 익사로 인한 재물피해…
    이 모든 것들보다도 중요한 우선 순위인 제자가 되어지는 삶,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지고 통치되어지는 삶을 따라가기가 정말 쉽지 않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세상의 논리와 생각으로 따진다면,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거나 삶에서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는 “First things first. Your business is life, not death” 영원한 것을 위해 무한하지 못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생각되어집니다. 오늘도 무한하지 않는 것을 쫓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쫓아가기를 기도합니다.

    Like

  3. 첯째도 주님, 둘째도 주님, 마지막도 주님, 모든것을 주님뜻에 따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직 주님안에서 만이 영의 건강 마음의 건강을 구할수있음을 고백합니다.
    신종 바이러스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치유의 안수를 기도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마음의 상처로 눈물 흘리는 지체의 눈물을 닥아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4. 사순절 아침에 읽는 이 말씀은 오늘 하루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40일 내내 마음에 부대낄 것 같습니다.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흔드는 때에도 예수님만 의지하며 중심을 잡을 수 있겠는지 묻습니다. 세상의 상식은 물론 내 가치관에도 일치하는 선택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수 있겠는지 묻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더불어 살 수 있게 하신 어제 말씀과는 반대로 오늘은 고독하고 고단한 제자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뜨거운 동정심과 단호한 결단을 연이어 촉구하십니다.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Like

  5. 예수님은 인자가 머리를 둘 곳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배푸시고. 지혜로운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로마병사들에게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받았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자기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움에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도왔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떠나기를 바랬습니다. 아무래도 초자연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사회로부터 고립됐었을테고. 예수님의 기적이 그들에게 도움되지 않았기에 한 행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을 포함해 세계곳곳에서 코로나버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기보다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까 궁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잔뜩 사서 비싼 가격에 팔고. 어떤 사람들은 공포심을 정치적 목적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분노와 공포도 같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행동이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나의 액션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지 조심하며. 아픈 이들을 위해 나누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