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23절: 진짜가 왔다

해설:

“동방 박사”(1절)는 지체 높은 귀족이 아니라 무명의 점성가들로 추정됩니다.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사람의 운명과 미래 역사를 점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 사람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감지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징조를 보고는 그 왕을 찾아가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이 헤롯에게 찾아가 새로 태어난 왕에 대해 묻자 그는 당황했습니다(3절). “당황하였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흔들렸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로마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유대인들을 통치하고 있던 헤롯 대왕은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신의 왕위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헤롯 왕 뿐 아니라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같이 흔들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흔들림은 거짓된 것들을 털어내고 진짜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헤롯 대왕은 그 흔들림의 원인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들여 메시아가 태어날 곳을 알아 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미가서 5장 2절의 예언을 근거로 베들레헴을 지목합니다(5-6절). 

헤롯 대왕은 동방 박사들을 불러 그 별이 나타난 시점을 캐어 물으며(7절)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왕이 될 아기를 찾으면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8절).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향하자 그들을 예루살렘까지 인도했던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9-10절).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아기를 뵙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11절)을 선물로 드립니다. 그들은 꿈에서 받은 계시를 따라 헤롯 대왕을 피하여 “다른 길로”(12절) 자기 나라에 돌아갑니다. 

헤롯 대왕은 동방 박사들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군대를 시켜 베들레헴 지경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살해 하라고 명령합니다(16절). 당시 베들레헴 인구를 감안해 보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만, 한 순간에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통곡 소리가 그 마을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태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해 냅니다. “나 주가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렘 31:15)라는 예언이 이 때에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헤롯 대왕이 파견한 군인들이 베들레헴에 당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려 주어 이집트로 피신하게 하십니다(13-14절). 그곳에 얼마간 머무르다가 헤롯 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돌아 옵니다(19-21절). 여기서 마태는 호세아 11장 1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15절).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때가 되었을 때 다시 불러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헤롯 대왕의 마수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살던 예수님을 때가 되어 다시 불러 내셨다는 뜻입니다. 

헤롯 대왕이 죽자 로마 황제는 팔레스타인 땅을 나누어 헤롯 대왕의 자녀들이 분할 통치 하게 합니다. 그들 중에서 유다 땅을 분할 받은 헤롯 아켈라오의 악명이 제일 높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정착합니다(22절). 이 모든 일은 우연과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일입니다. 

묵상: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은 이방인 점성가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셨는데, 유대인들 중에는 아무도 알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요 1:11)라고 적습니다. 이 사실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어둠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절감하게 합니다.

이 사실은 또한 예수님이 단지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마태는 이미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그분의 가계에 이방인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립니다. 예수님이 단지 유대인의 후손이 아니라 전 인류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가계에 전 인류가 참여한 것처럼, 그분은 모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또한 모든 인류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탄생 소식이 이주 노동자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고, 그분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 이방인 점성가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한 유대 청년으로 나셨지만 그보다 먼저 한 인간으로 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유대인의 왕 메시아로 오셨지만 모든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모두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삶의 기초를 흔들어 놓으십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그 흔들림을 환영한 사람들도 있었고, 헤롯 대왕이나 유대인들처럼 그 흔들림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심하게 흔들린 사람만이 든든한 영원한 기초 위에 설 수 있습니다. 

6 thoughts on “마태복음 2장 1-23절: 진짜가 왔다

  1. 인류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동방의 점성가들을 통해 유대의 왕으로 오심을 알리시고 헤롯의 암살 계획을 요셉을 통해 에집트로 피신게 하시고 헤롯 사망후에 나사렜으로 돌아와 정착하고 성장하여 공생애를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구원의 사역을 되색이며 숨죽여 주님을 경배합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왕으로 오실 주님의 탄생을 알렸지만 그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리게 한 무지가 내 안에도 있음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총을 다시한번 구합니다.
    구원의 선물을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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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제 삶에 오셔서 하나하나 개입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과정을 보면, 사람의 시선과 생각으로는 때로는 절망적인 인들 혹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2살 아래의 아이들이 다 죽게 된 부분들, 해롯왕이 통치를 하고, 악명 높은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땅을 통치하는 일등…)
    그러나 그 사건 하나하나가 조각을 맞추듯,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큰 픽쳐를 이루어 감을 동시에 바라봅니다.
    제 삶에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 절망적인 부분들, 혼란스러운 부분들, 모든 상황 가운데, 우연이 아니라 섭리로, 섭리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늘도 살게 하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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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동방에서 출발한 박사들은 별을 보고 왔다 했습니다. 9절에는 보던 그 별이 다시 그들을 인도했다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the star they had seen in the east” 하며 이전에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온 것이 아닌 별을 찾아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당대에는 점성가라고는 하지만 박사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학문적인 지식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 별을 찾아 그 먼 거리를 떠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헤롯 왕을 만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가 물었던 것을 볼 때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지식층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자신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인가요. 하지만 남 태평양을 항해 할 때 무신론자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큰 소리 못친다는 것이겠지요. 동방 박사들의 믿음의 행진을 보며 차세대를 이끌어 나갈 믿음의 인재들이 이들과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성과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자들이 지도자들이 되어 크든 작든 공동체의 리더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도전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나약한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 쳐도 세월은 가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습니다. 부를 쌓아 놓은 들 가져 갈 수 없고 많은 지식이 있은 들 죽음과 함께 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평생 학문을 연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이 먼 길을 죽음을 불사하고 귀한 예물을 가지고 유대의 왕을 찾아 떠났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지 유대의 왕이라는 이유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연구하고 연구해도 찾을 수 없었던 진리였기에 그 진리를 찾아 나섰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잠시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적조차 없어지는 것이 안개가 아닌가요.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아니면 쾌락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에 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늘 부족함을 호소합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주님을 마음과 같이 섬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동방 박사들의 행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되신 주님께 물었지만 그는 진리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심은 진리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착각이 아닐까 생각하며 내가 주님 안에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신 삶이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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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탄극을 하면 동방박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아가는 이들의 목적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를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일 것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은 헤롯의 신하들입니다.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까지 이들을 안내한 것은 별입니다.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께 경배하려고 길을 떠났지만 구체적인 지식은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2장에서 또 천사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집트로 도망가라는 지시를 따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납니다. 헤롯이 죽자 요셉은 또 다시 천사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따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갑니다. 헤롯의 아들이 아비보다 더 잔인하다는 사실에 두려워진 요셉은 여기서도 천사의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 정착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키우는 요셉은 그때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아내와 아들을 보호하고 지키며 삽니다. 1장에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때는 마리아를 배려하는 마음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2장에서는 계시를 받는대로 침착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돋보입니다. 요셉에게는 삶의 목적, 목표, 의미, 방향, 미션…뭐라 부르든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지키고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만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히로와 영웅을 꿈꾸는 시대에 요셉처럼 사는 의로운 아버지들을 축복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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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동방 박사들 처럼 저희들도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황금을, 하나님이신 주님께 유향을,
    세상의 죄를 십자가에서 갚으신 주님께 몰약을 드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만난후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버리고 이웃과함께 다른 생명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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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새월호가 침몰 할 때 그 선박의 선장은 갇혀있는 승객들을 놓고 먼저 탈출했습니다. 그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선장으로서 승객들을 지켜야할 의무를 저버렸고. 반대로 승객중에 많은 학생들은 대기하라는 명령에 기다리다가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쁜징조는 우리 안에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인간은 짐승이 되기도 합니다. 전쟁과 기근에 몰려 남의 것을 뺐고, 죽이고, 심지어 남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헤롯왕은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한 마을에 모든 어린아이들을 죽이라 명령합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잔인무도함은 예수와 제자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도 보입니다. 이런 잔인무도함은 지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보이기에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서 남들을 지키기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기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그러셨고. 먼 조선 땅에서 목숨받쳐 선교하셨던 미국과 케나다 선교사님들이 그러셨고. 새월호에서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인솔하다 못 나오신 선생님들도 그랬습니다.

    세상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세요. 또 기도하는 건 저한테 주신 능력과 위치를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해 쓰도록 인도해주세요. 위기가 다가올 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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