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81-120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이유

해설:

시인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신이 되어 살아가는 교만한 사람들로 인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85절). 하지만 시인은 악으로 악을 갚으려 하지 않고 율법을 붙들고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다립니다(81절, 86절, 88절).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더디기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쳐 “시력조차 잃었으며(82절) “연기에 그을린 가죽부대처럼”(83절)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영영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때때로 느낍니다(84절).

시인은 악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악인들의 표적이 되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으며, 하늘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89절) 때문이며, 주님은 영원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90절).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삼고(92절)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놓지 않습니다(93절).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96절). 

주님의 법은 그 맛을 알고 나면 온 종일 그것만을 생각할 정도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97절). 율법은 또한 온갖 지혜를 담고 있기에 그것을 사모하다 보면 원수들보다(98절), 스승들보다(99절), 노인들보다(100절) 더 지혜롭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103절)라고,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105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고난이 심하고(107절) 언제나 위기에 처해 살고 있으나(109절) 주님의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증거는 내 마음의 기쁨이요, 그 증거는 내 영원한 기업입니다”(111절)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희망입니다(114절). 고난 중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오직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기에 전념합니다(115-120절).

묵상: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교만한 자들” 즉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신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요 대세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무시 당하고 조롱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악인들은 그런 모습조차 보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때로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고난 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며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진리로 충만하시고 흠 없이 거룩 하시며 약속을 끝내 지키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세상에 믿을 만한 대상은 그분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그 말씀은 사랑할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율법은 무겁고 어두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맛을 알고 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 종일 그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셋째는 그 말씀 안에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등불처럼 갈 길을 비추어 주고 지혜롭게 해 줍니다. 

이것은 체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실천할 때에만 그 맛을 알 수 있고 그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품 안에 든든히 붙들어 줍니다. 

3 thoughts on “시편 119편 81-120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이유

  1. 오늘은 시인을 통해 하나님의 정체를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진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지킬 때 받는 은혜와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앞날에 지침이 됨을 상기 시켜줍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매 순간을 지배하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의 묵상이 온 종일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게 해 주십시요, 그 말씀 안에서 하루가 기쁨과 희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입술도 지배해 주십시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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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인은 다짐합니다. “내가 주의 명령들을 지키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합니다 (112절).” 새벽마다 마음을 추스리지 않으면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고 한달이 어느새 다 지나간다 싶더니 세상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흉흉합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통령 탄핵 재판으로 우울하고, 헬리콥터 추락으로 코비 브라이언과 그의 딸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과 부모의 죽음이 커다란 충격을 가져 왔습니다. 탄핵을 면한 대통령에게서 심기일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원래 가졌던 실망감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시편의 기자가 그리는 상황이 우리 시대의 현실과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말씀을 따라 살 수 없게 만드는 훼방꾼과 위험 요소는 그때 못지않게 사방천지에 가득합니다. 교회 안도 시끄럽고 교회 밖도 혼잡합니다. 말씀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무섭고 말씀대로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무섭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산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화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말로 고백해야 행동이 따른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침에 말씀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말씀을 등불과 빛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뭔가가 달라도 다를 것입니다. “구별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앞서 레위기에서 묵상한 거룩함의 숙제는 성경 어디를 읽어도 매일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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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도 주님 말씀 앞에 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 이니이다.” (시편 119:105)
    매 설교시간 전 마다 부르는 이 말씀이 오늘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단순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의미를 더 넘어서, 비록 그 길이 가시 밭길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지나가기 힘든 길임에도 불구하고, 시편의 기자의 의지와 고백이 함께 있음을 봅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시편 119:106)

    단순히 평탄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때론 이해가 되지않는 길 혹은 지나가기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주님의 말씀이 빛추는 그 길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선택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앞에 펼쳐진 여러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조명하는 그 곳으로 오늘도 한걸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내 앞에 펼쳐진 여러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조명하는 그 곳으로 오늘도 한걸음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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