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1-40절: 오만한 자들과 함께 살기

해설:

이 시편은 히브리어의 22개의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지은 시편입니다(acrostic psalm). 여덟 절이 한 알파벳에 속하는데,  여덟 행이 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암송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씀을 암송 하면서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많은 이들에게 암송 하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중에는 이 시편을 암송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도 회심한 이후로 매일 아침이 이 시편을 암송 했다고 합니다.

주제로 본다면 이 시편은 1편이나 19편과 같이 “율법에 대한 사랑” 혹은 “율법에 대한 찬양”입니다. 178절이 모두 율법의 가치, 율법의 의미, 율법의 기쁨, 율법에 대한 사랑, 율법에 대한 헌신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구조나 흐름을 따라 지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여러 가지 말로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율법에 대해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든 용어들–“주님의 법”, “주님의 증거”, “주님의 길”, 주님의 율례”, “주님의 계명”, “주님의 판단”, “주님의 교훈”, “주님의 말씀”, “주님의 법도”, “주님의 규례”–을 섞어 쓰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1-3절).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길을 따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4-8절).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은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게”(9절)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으면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됩니다(10-11절). 그뿐 아니라 주님의 교훈을 묵상하며 그 길을 따르는 것은 그것 자체로 큰 기쁨입니다(12-16절).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율법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17-18절). 율법의 뜻을 이해하고 깨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마치 하나님께서 그 뜻을 감추고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19절). 그 뜻을 깨우치려고 애쓰다가 쇠약해질 정도입니다(20절). 오만한 자들은 주님을 멸시하며 주님의 율법을 따르는 자신을 또한 멸시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고 지키기를 다짐합니다(21-24절).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만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은 때로는 손해 보는 일이요 무시 당하는 일이며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시인은 구합니다(25절, 28절, 31절). 시인에게 수치는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헛된 것에서 기쁨을 찾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37절). 그렇게 되면 탐욕에 휘둘리고 결국 믿음을 놓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이 있나 보라”면서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오직 한 가지 바램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보호 받는 것입니다(38-40절).

묵상:    

율법은 ‘인간 사용 설명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성에 물든 인간이 스스로 복을 누리고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길을 안내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전제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이상에는 못 미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죄성으로 인해 인간이 그처럼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성을 가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을 적절한 정도에서 절제 하면서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의 차원에서 보면 율법은 억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변화하는 상황에서 율법에 배여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그 뜻을 찾느라 영혼이 쇠약 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율법의 의미를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버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그 율법을 행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오만한 자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정은 오늘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의 기도는 늘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그 뜻을 살뜰히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4 thoughts on “시편 119편 1-40절: 오만한 자들과 함께 살기

  1. 지금까지 배워 온 율례들을 생각해 보며 말과 행동의 지침을 어떻게 해 왔으며 어떻게 하고있고 또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를 묵상하며 다시 한번 예수님이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첫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두번 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앞에 섭니다, 간단 한 두 계명으로 삶의 지침을 말씀하시지만 그 것을 진심으로 깨닳게 해 주시고 그 말씀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게 하시어 땅에서 감깐 있는 나그네의 삶에서 주님을 증거하며 말씀 안에서 진리를 찾아 신실 한 여정을 끝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율례안에서 오늘 하루도 복된 날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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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땅에서 나그네 (19절) 로 사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주의 교훈을 이해하기를 원하며 마음을 다하여 주의 법에 순종하기를 간구하는 시인의 마음이 천년의 세월을 몇 번씩이나 넘으며 오늘 나에게까지 전해옵니다. 30절에서 시인이 말합니다. “나의 마음을 주의 법도들에 맞추어놓았습니다. I post your road signs at every curve and corner.” 참 좋은 표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붙여놓으신 표지판이지만 매일 하나님의 법도를 보기를 원하며 가는 길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표지판을 찾기로 결단한 시인의 응답으로 읽습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펼쳐 읽으며 내 좁은 시야가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순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표지판을 보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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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을 바로 더많이 아주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숨 쉴때까지 이웃과함께
    예수님의 향기를 품으며 생명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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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금같은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본문을 보며 시편기자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했는지가 보입니다.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요청합니다. 눈을 뜨게해서 율법의 놀라움을 보게 해달라고. 가르치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율법을 끝까지 따르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율법의 형태만 따르는게 아니라 기도와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합니다. 제 마음에 깨닳음을 주셔서 제 삶에 기쁨을 더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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