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6편: 고난 중에 새롭게 만나는 하나님

해설:

113편부터 이어지는 ‘할렐시편’ 중 하나로서 이 시편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기도입니다. 

먼저 시인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평생토록 기도하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1-2절). 얼마 전, 그는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스올”(3절)은 바닥을 알 수 없이 깊은 구덩이를 말합니다. “스올의 고통”은 어둠 속으로 한 없이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을 호소했습니다(4절).

그 경험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분”(5절)입니다. 또한 그분은 “가련한”(6절)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기억하며 시인은 “너는 마음을 편히 가져라”(7절)고 자신을 타이릅니다. 하나님을 냉엄하고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안다면 그분을 생각하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시고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마음이 편안 해집니다. 설사 고난을 당하더라도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돌보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9절)라고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시인은 다시 고난 받을 때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10절)는 생각으로 시달릴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배신 당하여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11절)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도 믿음으로 견뎌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응답하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12절). 첫 번째로 할 일은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13절, 17절)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보다 더 갚진 선물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주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일입니다(14절, 18-19절).

이렇게 고백하는 가운데 시인은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15절)고 고백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렵게 여겼습니다. 어떻게든 피할 것으로 여겼고, 죽는다는 것은 곧 파멸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그렇다면 사람의 죽음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죽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도 감사히 받아 들입니다. 

묵상:

고난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압살시키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더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반면, 안정과 번영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부패시키거나 약화시킵니다. 도심에서는 밤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지만, 광야에 나가면 쏟아질 듯 하늘 가득 별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아리조나 광야에서 본 밤하늘에는 워싱턴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이 가득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존재는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안락한 환경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불편하고 척박한 자리에 가면 하나님의 존재가 보입니다.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던 하나님의 임재가 아리조나 광야에서는 친밀하게 느껴졌습니다. 건강하고 만사가 편할 때에는 하나님이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려납니다. 반면, 몸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면 하나님이 절실해집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다가 그분의 침묵에 절망하고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바라는 방식대로 응답해 주시기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하시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과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는 다른 때에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고 더 깊은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시인처럼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겠습니다”(2절)라고 혹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9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찬양과 감사로, 서원한 것을 행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5 thoughts on “시편 116편: 고난 중에 새롭게 만나는 하나님

  1.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는 주님, 고난과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을 때 은혜롭고 긍휼하시고 의로우신 주님은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보십니다. 내 영혼을 지켜주시며 내 눈물을 닥가주시며 내가 비틀거릴 때에도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려 합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주님의 간섭과 안내를 받으며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의 삶에서도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하려 합니다, 남은 여생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종으로 삶에 부끄럼 없기를 간구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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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생에서 만나는 괴로움은 10절에서 시인이 표현하는 “나는 큰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과 11절의 외침,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0절의 큰 고통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비극과 불운이고, 11절의 절망은 욕심이 빚어낸 타인을 향한 악한 의지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공을 들인다해도 이 두 가지를 미리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자기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살아있는 동안 주를 부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결사” 하나님이 아니라 “친구” 하나님을 봅니다. 사람이 다 제각각이요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인 것 같다가도 아픔과 고통이 공통분모라는 것이 보이면 연민과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질투심도 사그라집니다.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 하고 부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한 삶. 이런 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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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감사합니다, 기도에 침묵하시는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침묵하시는것이 나에게 좋기 때문 입니다. 거절하시는 주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믿음의 교만을 제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실때에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기쁘게 순종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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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만나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이전에 구본영이라는 작가가 변화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때, “살아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즉, 살아있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내 영혼과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매 말라 있고 죽어 있듯이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 삶을 변화시키고 나의 믿음과 영혼을 소생시키니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옵니다. 내 안에 갇혀 있던 좁은 관점과 경험에서,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이 마음 속 깊게 남겨집니다.
    새번역 “내 영혼아, 주님이 너를 너그럽게 대해 주셨으니 너는 마음을 편히 가져라.” (시편 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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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이가 들면서 옛날에 몰랐던 정치에 대해서좀 더 알게되면서 화나고 역겨워 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이념의 다름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위해 거짓말하는 걸 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세상이 참 어둡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본문에 시편기자는 지금 당장이 어찌하더라도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거라 믿고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처럼 그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한 맹세를 지키리라 선포합니다.

    저도 시편기자의 믿음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변에 관계 속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기를 원합니다.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 하나님 바라보며 우직하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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