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7장 1-34절: 하나님의 여유

해설:

27장은 일종의 부록과 같습니다. 레위기 전체에 대한 결론은 이미 앞장(26장)에서 주어졌습니다. 부록에서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무르는 경우에 대한 규정을 다룹니다.

어떤 사정에 처하여 자식이나 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바친 그 사람은 제사장의 소유가 됩니다. 한나가 늙은 나이에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로 인해 사무엘은 어머니를 떠나 엘리 제사장의 집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삼상 1:24-28). 사람을 바친 경우에, 나중에 사정이 바뀌면 그 사람을 무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의 노동력을 고려하여 무르는 값을 정해야 합니다(2-7절). 만일 무르려고 하는 사람이 가난하여 그 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제사장이 그 사람의 형편에 맞게 값을 정해 줄 수 있습니다(8절).

바친 것이 짐승이면 무르지 못합니다. 값을 쳐서 무르지도 못하고, 다른 것으로 바꾸지도 못합니다(9-10절). 다만, 바친 짐승에게 문제가 있다고 제사장이 인정하면 그 짐승은 값을 쳐서 무를 수 있습니다(11-13절). 집을 바칠 때면, 제사장이 그 집의 값을 매긴 다음 받습니다. 집 주인이 나중에 그 집을 무르고 싶으면 그 값의 120%를 지불해야 합니다(14-15절). 유산으로 받은 밭을 바치는 경우에는 희년까지의 시간을 계산하여 값을 매겨야 합니다. 밭을 판 사람이 나중에 무르고 싶으면 그 값의 120%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밭은 희년이 되어도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습니다(16-21절). 반면, 자신이 사들인 밭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친 경우에는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22-24절). 

처음 태어난 짐승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26절). 하지만 그 짐승에게 흠이 있을 경우에는 그 값의 120%를 지불하고 짐승을 무를 수 있습니다. 무를 수 없으면 제사장이 매긴 값에 팔아 그 돈을 제사장에게 주어야 합니다(27절). 

28-29절은 “가장 거룩한 것” 즉 ‘헤렘’에 관한 규정입니다. 히브리어 ‘헤렘’은 완전하고도 철저한 제물을 가리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서원이 아니라 특별한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헤렘으로 드린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무를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렘으로 서원하려 할 경우에는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땅에서 난 모든 열매와 곡식의 십분의 일은 주님에게 바쳐서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해야 합니다(30절). 만일 드려야 할 열매와 곡식을 무르고 싶으면 그것을 값으로 환산하여 120%를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31절). 소떼와 양떼의 경우에도 열에 하나는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33-34절).

묵상: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바친 다음 무를 수 있는 규정을 읽으면서 우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여유’를 발견합니다. 율법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무척 빡빡한 분으로 느껴집니다. 털끝만큼의 여유도 없는 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율법 규정에서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외 규정을 마련하신 데서 보듯, 그분은 인간으로서 이르러야 할 최선을 제시 하시지만 숨 쉴 틈 없이 몰아세우는 분이 아닙니다.

‘달란트의 비유’에 등장하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하나님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 줍니다. 그 일에 대해 주인이 문책하자 그가 말합니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마 25:24-25). 한 달란트(성인 노동자의 30년 연봉)를 가지고 장사를 하다가 손해를 보면 주인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반면, 다른 두 종은 장사를 하다가 밑천을 잃어도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주인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소신껏 사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사업이 잘 되어 두 배의 이득을 남긴 것입니다. 

성경을 편집한 사람이 레위기의 마지막에 이 부록을 첨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레위기에 가득 담긴 율법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수정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복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 규정이 때로 엄정하고 철저하고 냉혹한 이유는 그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 규정의 자구에 매어 하나님을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재판관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분이 주신 율법에는 이곳 저곳에 숨구멍이 나 있고 때로 눈물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그 본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4 thoughts on “레위기 27장 1-34절: 하나님의 여유

  1. 관리들의 횡포가 심해 일반 백성의 삶이 가장 피폐하던 광해군 시대의 대동법을 상기 시키는 제물에 대한 규정을 보며 당시이 제사장들의 권한과 일반 뱅성들이 드려야 하는 열거된 제물을 읽다보니 궁극은 완전 한 제물인 “헤렘”으러 상징되는 예수님을 상기합니다, 성직자들과 일반 백성들 간의 부조리조차 단번에 해결하신 예수님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전 례위기를 통해 다시한번 “십자가의 사랑”으로 주님의 율법이 완성 되는 구속에 감사를 드리며 그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은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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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씀을 음식에 비유하면 레위기는 맛있는 음식은 아닙니다. 흔히 하는 말로 식감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계속 먹고 싶은 중독성 있는 맛도 아닙니다. 어렸을 때 먹기 싫은데도 몸에 좋다고, 키가 큰다고 해서 먹던 콩밥이나 토란국, 시금치 같은 음식입니다. 오늘로 레위기 묵상을 마칩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폭과 키가 자랐을까요. 구약 말씀을 읽을 때 흔히 드는 생각 중 하나가 유대교 전통과 신앙을 잘 지키는 유대인 친구가 한 사람 쯤 있으면 좋겠다 입니다. 책을 읽거나 구글로 검색해서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음식과 문화가 외국인들 사이에 흥미를 일으키는 요즘에 마켓에 가면 어떤 (상표) 김이 맛있냐고 라면은 어느 상표가 덜 매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켓에 “자리 깔고” 외국 손님들 도와주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해야겠다고 농담도 했습니다. 유대인 친구가 있다면 정결예식, 음식규정, 제사, 절기…물어볼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1월 내내 읽은 레위기처럼 조상에게 명령으로 주신 율법을 요즘에는 어떻게 이해하고 지키는지 묻고 싶습니다. 게티 미술관에서 미술 공부를 같이 하는 그룹이 30명쯤 있는데 그 중에 유대인이 열 명 넘습니다. 그중에는 자기들 템플 일에 적극적인 사람들도 있고, 유대인 사회봉사 센터에서 열심인 사람도 있습니다. 미술 공부를 하면서 신앙이 주제가 되어 토론하는 일은 없지만 서양 미술문화사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미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론 시간에 신앙적인 칼라나 견해를 내비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종교와 신앙은 기독교 신자인 내가 생각하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차 말고, 삶에서 신앙이 차지하는 위치나 중요성 면에서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 조금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유대교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들이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스스로를 “secular Jew,” 즉 종교적인 유대인 “observant Jew” 이 아니라 혈통으로만 유대인이라는 뉴앙스로 소개하지만 유대교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로 나뉘겠지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율법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꿀보다 단 것 같지 않은 레위기, 정말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로우며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내는지” 물어보게 만드는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어디를 향하는지 계속 묵상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덧입은 자녀로 살려면 어떤 중심과 외양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기도하며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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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레위기 27장 서원 예물의 값들을 열거한 부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를 묵상합니다. 서원을 했지만, 다시 무를 경우, 정해진 값을 다시 내게 되는 이 율법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그러나 서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그 값을 치러야 하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느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나온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가 오늘도 내 삶에 있기를 원합니다.
    내 죄 때문에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곳인 십자가,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은혜의 자리인 십자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는 오늘 하루, “예수님 짜리” (달러 혹은 위안) 에 걸맞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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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렵운 심판자, 주님을 생각하는 레위기 뒤에 숨겨진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하는 귀한
    묵상입니다. 죽음의 심판을 지나 십자가의 은혜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이웃과함께 영생의 길을 세상에 소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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