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5장 1-55절: 율법이 지향하는 이상 사회

해설:

한 주간의 6일 동안은 일을 하되 마지막 날은 거룩하게 여겨 생업을 위한 일을 멈추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 원리를 따라 6년 동안 경작한 토지를 7년째 쉬게 해 주는 것이 안식년입니다(2-7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여 살 때를 위해 미리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지침을 주십니다. 

안식년에 대한 명령은 인간만이 아니라 온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땅도 생명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쉬게 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을 듣는 사람은 “한 해 동안 경작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20절). 안식일과 안식년의 계명은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급하심 때문임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해에 두 해 동안(경작하지 않는 한 해와 다시 경작하여 추수할 때까지의 한 해) 먹을 소출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21-22절). 안식년 계명은 하나님의 주권과 공급하심을 정말 믿는지를 알아보는 시험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안식년을 일곱 번 반복한 다음 해 즉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으로 정하여 지켜야 합니다. 50년째 되는 해 대속죄일(유대력 7월 10일)에 뿔나팔을 부는 것으로 희년이 시작됩니다(8-10절). 희년에는 안식년에 지켜야 할 일들(11절-12절)에 더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 노예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고 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인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토지를 매매할 때에는 희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하여 희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토지 매매값을 낮게 잡아야 하고 많이 남았으면 높이 잡아야 합니다(14-16절).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웃에게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 된다”(14절, 17절)는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합니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만 “나그네”이며 “임시 거주자”이기 때문입니다(23절). 희년과 희년 사이에 사정이 생겨서 분할받은 토지를 매매할 수는 있지만, 원주인이나 원주인의 친척이 물러 달라고 하면 산 사람은 언제든지 값을 받고 물러 주어야 합니다(24-27절). 그렇지 않아도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무상으로 돌려 주어야 합니다(28절). 토지에 집을 지었다면 그 집도 원주인에게 주어야 합니다(31절). “성곽 안에 있는 집”(29절) 즉 공동 거주지에 있는 집을 매매한 경우에는 한해가 지난 후부터는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레위 사람들은 토지를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곽 안에 있는 집을 매매 했을 경우에 언제든지 무를 수 있고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32-34절).

이어서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살이로부터 해방시키신 분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가난하고 가련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어서도 안 되고, 그들을 상대로 어떤 이익을 남기려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입니다(35-38절). 만일 그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종으로 팔았다고 해도 그를 종처럼 부려서는 안 됩니다(39절). 또한 희년이 되면 그를 자유인으로 돌려 보내 주어야 합니다(41절). 

외국인을 종으로 산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됩니다(44-45절). 하지만 그들 가운데 사는 외국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샀을 때는 언제든지 값을 치루고 무를 수 있습니다(48-52절). 그렇지 않을 경우에 노예 계약은 매 년 갱신하는 것으로 해야 하고, 종처럼 부려서는 안 됩니다(53절). 또한 희년이 되면 그 외국인은 그 종을 자유인으로 풀어 주어야 합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품꾼이기 때문입니다(55절).

묵상: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규정은 율법이 지향하는 이상을 인상적으로 보여 줍니다. 율법은 완전한 이상 사회를 꿈꾸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완전한 이상 사회는 이 땅에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선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정의와 평화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희년법은 49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본주의적인 경제 활동을 허락합니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으나 열심히 일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토지를 사들여 땅부자가 될 수도 있으며 가난한 이웃을 종으로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종을 심하게 부려서는 안 되고 원주인이 물러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토지를 물러 주어야 합니다. 희년이 되면 종을 자유인으로 풀어 주어야 하고 사들인 토지를 원주인에게 무상으로 돌려 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용어로 하면 50년에 한 번씩 사회주의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적어도 50년에 한 번씩 모두가 같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역사 중에 희년법이 실제로 적용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희년법을 실행에 옮기려면 가진 자들이 결단해야 하는데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에서 보듯 인간은 율법이 지향하는 최소한의 이상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죄성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 이사야는 이 희년법의 이상이 메시아가 오실 때 실현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61:1-2).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나사렛 회당에서 이 예언을 읽으신 후에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눅 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자신이라는 뜻이며, 당신이 하실 일이 곧 희년의 이상을 이루는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희년의 이상을 실현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생겨난 가난과 질병과 장애와 차별과 억압에 의해 짓눌린 사람들을 회복시켜 내신 것입니다. 희년의 완전한 실현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5 thoughts on “레위기 25장 1-55절: 율법이 지향하는 이상 사회

  1. 안식년과 희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지침을 주면서 특히 주의를 끌게 하는 “서로 이웃에게서 부당 한 이익을 남기려 하지 말라”, 살면서 이웃간에 다툼이 나는 것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승화하신것을 묵상해 봅니다.
    동족에 대한 특별 한 지침을 주시는 대목에서 우리 북쪽에 있는 동포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통일 후에 북쪽 동족과 어떤 관계를 기져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에서 품기는 모순을 오늘 주시는 말씀에 비추어 봅니다.
    이런 모든 것의 결론은 “네ㅡ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녹아 있음을 상기하며 내 이웃에게 한발 더 까까이 가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오늘 하루도 영적인 희년을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모든 아픔과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회복하는 그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제 삶에 오셨을 때, 저의 모든 아픔과 슬픔, 정체성, 저의 잘나고 못난 모습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맞이 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이미 내 삶에 희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늘도 그 희년의 삶을 이어 나가서 완전한 희년인, 새 하늘과 새 땅까지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Like

  3. 일제시대 때 몇몇 대지주가 전체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했었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지주에 빌붙어 토지를 빌려 연명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빛을 지어야 했고 노예처럼 지주들에게 예속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해방직후에 토지개혁을 통해 국가가 지주의 토지를 매입해 농민들에게 싸게 나눠줬습니다.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생계를 보장했을 뿐 아니라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본문에 희년은 자본주의가 낳는 부가 고착되고 대물림 되는 문제를 직접 해결합니다. 심한 부의 불평등은 여러면으로 정의롭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가난에서 허덕이며 희망없이 살아갑니다. 부유한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재산을 더 축적할 수 있을지 혈안합니다. 그들은 특히 부가 자신의 영을 갈먹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 착각합니다.

    한국에서 토지개혁이 이뤄진지 70년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동안에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서 이제 많은 이들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하며 그 심각한 상태를 풍자합니다. 개인의 노력보다 출생한 가정이 더 중요해 지고. 어찌보면 선의의 경쟁을 막는 반시장주의 적인 모습으로 변태하고 있습니다.

    희년을 도입하려면 기득권을 놓아야 할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도와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게 아니란 건 공산주의체제의 몰락에서도 봤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이 온전히 흘러야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와 사회 안에서 구제와 선교에 힘써야 될지 기도합니다.

    Like

  4. 오늘 말씀이 모두에게 희소식이 되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열심히 해도 기대만큼의 소득을 얻지 못하다가도 한 해를 안식한 뒤 또 다시 시작해보는 기회의 공평함이 보장되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현실이 암울할수록 머리로 그리는 이상의 세계는 더욱 찬란하지요. 여선교회에서 중점적으로 기도하고 연구하며 캠페인으로 삼는 4대 과제 안에 경제 불평등 (Economic Inequality)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이 받는 불평등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정의 이슈입니다. 여성은 처음부터 기우뚱한 상태에서 불편하고 어려운 시작을 해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 젠더에 따라 시작점과 기준점이 달라진다면 젠더를 “극복”하려는 (바꾸려는, 선택하려는) 생각도 갖게 되다가 기술적인 발달이 가능해지자 생각이 현실화된 것을 목격하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땅의 안식, 생명의 쉼은 하나님의 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리듬, 하나님의 페이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지침을 곰곰 새기며 욕심과 조급함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Like

  5.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노예로 부터 자유인으로 구속 하신 주님을 항상 잊지않고
    하나님의 품꾼으로서 허덕이는 믿음의 가족을 찾아 이웃과 함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