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0장 1-27절: 두 가지 음행

해설:

20장에는 사형으로 징벌해야 할 중대한 죄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먼저, 몰렉에게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몰렉은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신으로서, 다산과 풍요를 구하기 위해 그 신에게 어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행위는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행위이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3절). 그런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투석형으로 다스리라고 하십니다(2절). 그런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고는 그 풍습의 깊은 뿌리를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을 보고도 묵인한다면, 묵인한 모든 사람들이 그 죄값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4-5절). “혼백을 불러내는 여자와 마법을 쓰는 사람”(6절)에게 찾아 다니는 행위도 엄정하게 다뤄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역시 투석형에 처해야 합니다(27절). 

이어서 부모를 저주하는 행위(9절)에 더하여 부정한 성행위를 행한 사람들에서도 극단적인 처벌을 제시하십니다. 유부녀와의 성관계(10절)를 비롯하여 “제 아버지의 아내(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의 다른 아내)”(11절), 시아버지와 며느리(12절), 동성끼리(13절), 장모(14절), 짐승(15-16절), 남매 사이(17절), 생리중의 여성(18절), 이모 혹은 고모(19절), 숙모(20절) 그리고 형수 혹은 제수(21절) 등과의 성관계는 모두 사형으로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경우에 성관계에 참여한 쌍방을 모두 벌하라고 하십니다. 남성이 강제로 범한 경우는 물론이고 쌍방이 합의하여 성관계를 가졌어도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들이 장차 들어가 거주할 땅이 그들을 토해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22절). 그들이 들어가 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24절)입니다. 그 땅의 주민들이 쫓겨난 이유는 그들이 온갖 성적인 악행을 통해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26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성은 부정한 것과 정한 것, 부정한 동물과 정한 동물을 구분하는 것만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범위와 질서와 한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제한하고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건강하며 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묵상:

여기서 하나님은 두 종류의 음행을 엄중하게 금지하십니다. 하나는 영적 간음입니다.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행위, 혼백을 불러내거나 마법을 쓰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행위는 모두 영적 간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주 하나님과 거룩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렇기에 우상이나 귀신을 섬기는 것은 영적으로 외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적 외도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로 인해 당신의 귀한 자녀들이 악한 영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육신적인 음행입니다. 18장에서도 보았듯이, 성은 불과 같습니다. 정해진 범위와 한도와 질서 안에서 사용되면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자신과 이웃에게 큰 해를 끼칩니다. 또한 성적 타락은 땅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온갖 성적 부도덕을 엄중히 금해야 했습니다. 

“돌로 쳐 죽여야 한다”(2절) 혹은 “불에 태워 처형해야 한다”(14절)는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현대 독자들은 놀랍니다. ‘이렇게 야만적인 행위를 하나님이 명령하시다니……’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 의문에 대해 깔끔하게 답할 도리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한 두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어떤 죄에 대해 벌을 정하는 것은 그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벌의 무게는 그 죄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어떤 죄에 대해 끔찍한 처형을 주문한다는 말은 그 죄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제사장 백성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모든 죄로부터 끊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극단적인 처벌을 요구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것을 알기에 가나안 정착 후에 20장에 제시된 그대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이 율법 규정은 죄의 심각성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로만 읽혀졌고, 실제의 재판에서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율법 규정을 읽으면서 여기에 열거된 죄들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들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 해방 운동의 절정에 와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4 thoughts on “레위기 20장 1-27절: 두 가지 음행

  1. 다시 한번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특히 성적 죄악을 영적 죄악과 육체적 죄악으로 열거하시며 근친 상간, 동성애 그리고 동물과의 성적 물란을 극형에 처하라고 말씀을 하는데 동양문화에서 살아온 우리 이민 일세들에게는 별로 해당 되는 일이 없지만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간다는 말은 종종 있는 거 같지만 별로 흔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중에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부인을 아내로 취해야 한다는 풍습이 그당시 농경사회에서 과부가 살수있는 유일 한 방법으로 이해를 하지만 그런 문화로 인해 근친 상간이 서양문화에서 생기지 안았나 생각해 봅니다.
    총체적으로 주시는 말씀인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 속에서 늘 구별 된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언행을 통해 주님의 자녀의 냄새를 풍겨 그로인한 전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시대를 가로질러 오는 말씀과 시대를 배경에 둔 채 정지한 듯 서 있는 말씀 두 개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시내산 광야에 머무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여러 다른 문화와 풍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싸움을 싸우고 정복하여 정착하기 까지 넘어야 할 고개가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는 이집트 문화와 풍습에 익숙하던 세대였지만 광야에 있는 동안 상당부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들을 기다리는 풍경은 이집트와 또 다릅니다. 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숙명적인 불편함이 가세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일반 사회에서 금기하는 일들을 섬에서는 사뭇 허용하고 해결한다는 견해입니다. 태평양의 여러 섬, 동남 아시아의 많은 섬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이런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사회마다 지리적인 특성에 맞추어 규범과 문화가 형성되기에 도서지역, 산악지방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섬 사람들의 생존이 고립되어 있는 상태를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존은 새로운 풍속에 적응하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점은 시대를 불문하고 이민자들이라면 다 공감하는 문제겠지요. 이스라엘 광야 공동체는 섬에서 살다 바다를 건너 육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지만 고립에서 섞임의 단계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룩함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일 수 있습니다. 레위기를 읽으면서 생각하는 거룩함은 살아있는 동안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어디나 하늘 나라”라면, 섬이든 육지든 거룩함을 덧입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실로 커다란 숙제입니다. 거룩하게 살라는 명령은 시대를 가로질러 내게 도착했습니다. 본문 27절 안에 담긴 명령 하나 하나는 시공의 테두리 안에 정지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거룩함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 시대 이곳에서 똑같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Like

  3.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v.20)” 하나님께서 인도한 우리가 거룩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땅이 우리를 토 한다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영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v.23 a), 레위기 20장에 나와 있는 모든 죄와 풍속들을 쫒지 마라고 하셨는데, 로마서 말씀인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하라” 가 기억납니다.

    세상의 풍속과 기준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기준을 가지고, 오늘도 거룩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거룩한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그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하나님의 기준과 거룩한 마음이 풍성한 영적인 가나안땅을 소망하며, 그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도, 그 기준과 마음에 발맞추며 나아가야겠습니다. 할렐루야!

    Like

  4. 보혈을 지나 이미 주님의 품에 왔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에 한눈을
    팔고있는 형편입니다. 매일 아침뿐만이 아니라 항상 영의 양식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생명수로 누출하고 더러운 인생관을 깨끗이 씻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