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9장 1-37절: 연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

해설:

19장에는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2절)는 말씀에 이어 일상 생활에서 거룩하게 사는 여러 가지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3-4절과 11-12절은 십계명의 일부를 다시 강조하고 있고, 5-8절은 앞에 나온(7:16-18) 화목제물에 관한 규정을 다시 강조합니다. 

이 장에 새롭게 나오는 규정들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를 요구합니다. 곡식과 포도를 추수할 때 구석에 있는 것들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놓아 두고, 추수하다가 흘리는 것이 있어도 줍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십니다(9-10절).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10절)을 위한 배려입니다. 품꾼의 품삯을 당일에 주라고 하십니다(11절).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가족 전체를 굶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저주하지 말며, 눈 먼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4절). 이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말씀인 동시에, 어리석은 사람을 속여먹지 말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재판을 할 때는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15절). 험담하지 말라고 하시고,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6절). 이웃이 잘못할 때 모른척 하지 말고 반드시 타이르라고 하십니다(17절). 한 백성끼리 서로 원수 갚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18절).

이렇게 여러 가지 사례들을 열거하신 후에 18절 마지막에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모든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계명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4-40).

서로 다른 가축을 교미시키거나 서로 다른 씨앗을 함께 뿌리거나 서로 다른 두 재료를 섞어 옷감을 짜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교란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19절). 20절부터 22절까지는 노예제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예가 주인의 폭행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규정을 주십니다. 과일 나무를 심었을 때는 처음 세 해 동안은 과일을 그대로 두고 넷째 해의 과일은 모두 제물로 드리고 다섯째 해부터 과일을 먹으라고 하십니다(23-25절). 이것은 과일 나무(생명)에 대한 배려이며 또한 그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6절부터 31절에서는 가나안 주민들이 행하던 이교적 풍습을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이웃 사랑의 몇 가지 사례들을 덧붙입니다. 노인을 적절한 예의로 대해야 합니다(32절). 그들 중에 함께 사는 외국인들을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처럼 사랑하여라”(34절)고 하십니다. 그들 자신들도 이집트에서 외국인 신세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판할 때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35-36절). 

이 모든 규정을 주신 후에 하나님은 다시금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십니다. “내가 바로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36절)라고도 하시고, “나는 주다”(37절)라고도 하십니다. 그런 분이 주신 명령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마땅합니다. 그분은 진리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거룩함은 일상 생활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성패는 업적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관계의 폭과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며,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죄의 본질은 관계를 깨뜨리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그 결과로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가 깨지면 그 안에서 우리는 지옥을 경험합니다. 관계가 심하게 깨어지면 가정이 산지옥이 되고 직장이 산지옥이 됩니다. 반면, 서로의 죄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면 가정은 지상 천국이 되고 직장은 거룩한 놀이터가 됩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요구하십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외국인들 같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도 과거에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5 thoughts on “레위기 19장 1-37절: 연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

  1. 오늘 주시는 말씀인 “창조의 질서” “이웃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주시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우리가 농경사회에서는 그런대로 주님의 창조질서가 그런대로 잘 지켜졌지만 산업화 후로는 빠른 속도로 대대적으로 자연 환경의 파괴가 심각하며 환경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지체 장애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향상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며 또 이웃과의 관계도 민족주의가 횡횡하며 종교의 갈등이 아직도 해결 할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을 느낍니다,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디에 와 있는가? 이웃을 얼마나 배려하며 살고 있는가? 창조의 질서를 얼마나 파괴하며 살고 있는가? 내 자신에게 뭃어보며 깊히 반성을 하는 시간입니다, 내 의지로 못 이루는 것들은 성령을 의지하게 해 주시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부드러운 눈길로 맞아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만이라도 주님의 질서가 내 생활속에 잘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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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도 귀한 말씀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죄의 본질인 관계가 파괴되는 것에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도 하나님의 자리, 사람의 자리가 있어서, 각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할 때, 인간은 거룩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을 되새겨 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벗어남으로 인해서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이웃과의 관계, 창조질서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며,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내 삶에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여러 얽혀 있는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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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본문을 봐도 말씀을 이해하고 지킨다는 의미가 한 가지일 뿐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해하는 폭과 깊이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무엇을 읽고 이해하는가 부터가 다릅니다. 글자를 읽습니까? 배경을 봅니까? 단어의 뜻을 압니까? 의도를 연구합니까? 목사님이 매일 올리는 짧은 해설에서도 이 모든 것 외에 더 많은 부분들도 공부하여 정리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플러스, 목사남의 삶에서 경험한 일들이 말씀에 비추어 그 경험도 재형성되고, 말씀도 새롭게 해석이 됩니다. 레위기에 나온 제사에 관한 규정은 이제는 그런 제사를 올리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지킨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13절에 나오는 품꾼의 삯에 관한 명령도 일당, 주급, 월급 등 삯을 지급하는 방식이 여러가지가 되었습니다. 머리털이나 턱수염, 문신 등의 규정도 이건 준수다, 이건 위반이다 하는 선을 긋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자들이 귓볼을 뚫고 귀고리를 하면 오늘 본문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당신 옷이 한 종류 재료로 만든 옷인지 꼭 확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일은 흑과 백으로 분명히 가려낼 수 없는 일입니다. 책마다 읽는 방식도 다릅니다. 시편과 레위기를 같은 독서법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66권이 다 같은 무게도 아닙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 들리는 예수님의 음성과 하박국이나 스바냐가 “화 있을 것이다!” 하는 소리는 같은 말인데도 다르게 들립니다. 교단의 아픔으로 자리잡은 동성애 이슈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느냐”는 말만 반복해서는 해결은 커녕 대화 자체도 할 수 없습니다. “법대로!” 라고 외치면서 싸우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레위기를 읽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Be holy because I, GOD, your God, am holy.” 이 말씀만 붙들어도 평생의 화두가 될 것입니다. 거룩함은 우리의 태생에서부터 영생까지 마주할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GOD.” 이 명령은 우리의 거룩함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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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아와 과부와 억울한 민초들을 먼저 살피시는 거룩하신 주님을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거룩 할수없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
    주님을 바라고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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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난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였습니다.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위해 힘쓰셨던 킹 목사님을 기억하는 날이죠. 킹 목사님은 성경을 인용하며 이렇게 얘기하셨죠. Let justice roll down like waters and rightousness like a mighty stream. 그는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정의롭지 않은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다 암살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은 공의를 위해 어떻게 할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십니다. 수천년이 지나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도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역행하며 약한자들을 보살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해야하는데.

    그러나 제 마음이 약하여 제 소유를 온전히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앞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 갈까 걱정하며 일이 수틀려지면 안달합니다. 힘 없는 자들에게 가진 연민은 말 뿐입니다. 부끄러운 자신을 반성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에 동참할지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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