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8장 1-30절: 성(sex)은 불과 같다

해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물과 제사장에 관한 규정이고, 11장부터 16장까지는 제사로 씻어내야 할 부정에 관한 규정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부정은 ‘제의적 부정’입니다. 부정하다고 규정된 상태에 처하거나, 부정하다고 규정된 것에 접촉함으로 인해 부정해지는 경우입니다. 18장부터는 ‘윤리적 부정’ 혹은 ‘행위의 부정’에 대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함으로 인해 부정해지는 경우입니다.

그 첫 번째로 성관계에 대한 규정이 제시됩니다. 성(sex)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동시에 자신을 더럽히고 인간 관계를 깨뜨리는 데 있어서 가장 파괴적인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행위의 부정’에 대해 규정하면서 가장 먼저 성관계에 대해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구체적인 규정을 주시기에 앞서 하나님은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두 번(3절, 4절) 선언하십니다. 5절에서는 “나는 주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살던 이집트 땅의 풍속도 따르지 말고, 이제 내가 이끌고 갈 땅, 가나안의 풍속도 따르지 말아라”(3절)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따르는 “풍속”은 그들이 믿는 종교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성적인 풍속은 그 종교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종교들과 가나안 종교들은 간음과 혼음의 풍습을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풍습을 따른다는 것은 곧 그 종교를 따른다는 뜻이고 그 신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종교의 풍습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규례를 따라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11:44)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성관계에 있어서도 거룩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먼저 “가까운 살붙이에게 접근하여 그 몸을 범하면 안 된다”(6절)고 말씀하십니다. 성적 욕망이 왜곡되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적인 관계가 주로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기에 남성의 경우를 전제로 규정이 주어지는데, 오늘에 적용한다면 여성도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7절부터 18절까지에는 성적으로 범해서는 안 될 “가까운 살붙이”가 구체적으로 열거됩니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적인 욕망은 마치 불과 같아서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상처와 아픔을 만들어냅니다. 이 모든 규정을 뒤집어 말하면, 성관계는 결혼한 배우자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절부터 23절까지에서는 그 외의 왜곡된 성관계(생리중인 여성과의 성관계, 이웃의 아내와의 성관계, 동성과의 성관계, 짐승과의 성관계)에 대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자식을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21절)은 당시 가나안에서 행해지던 ‘인신제사’ 풍습을 말합니다. 그 제사행위는 신과 나누는 최상의 성적 합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인간의 내면에 이와 같은 가증스럽고 왜곡된 성적 욕망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24절)입니다. 이런 행위로 인간이 부정해지면, 그들이 사는 땅이 부정해집니다(25절). 그러면 그 땅은 부정해진 거주자들을 토해내게 됩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그 땅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 땅이 그들의 “역겨운 짓”(26절)으로 인해 그들을 토해 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동일하게 역겨운 짓을 하게 되면, 그 땅은 가나안 주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토해낼 것입니다(28절). 그러므로 그런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백성은 그런 짓을 한 그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야”(29절)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일이 더 확산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묵상:

성(sex)은 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은 안전한 범위 안에서 사용될 때 여러 가지의 유익을 줍니다. 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몸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고 집 전체를 태울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불씨가 거대한 산 전체를 까맣게 만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은 인간 존재의 아주 작은 일부입니다만, 그것은 인간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하고 사랑받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 주며, 새로운 생명을 안는 신비와 기쁨을 안겨 줍니다. 하지만 정해진 범위를 넘어 성적 욕구가 표현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안겨 줍니다.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 되고, 그가 살고 있는 땅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성에 대한 모든 제한을 철폐하라” 혹은 “모든 성적 표현을 허하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모든 성적 욕망을 최대한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최선의 미덕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여야 한다”는 하나님의 요구는 우리의 성을 사용하는 면에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가장 좋은 선물이므로 가장 귀하게 다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범위 내에서 사용할 때 성은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을 충족시키고 사랑을 성숙시켜 줍니다. 오늘날의 성적 왜곡과 성적 도착은 인간성을 파괴시키고 사랑을 고갈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고 괴롭히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다스리고 관리하여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4 thoughts on “레위기 18장 1-30절: 성(sex)은 불과 같다

  1. 근친 상간, 동성애, 동물과의 성 관계에 주시는 말씀 속에 성적 행위의 한계를 말씀함과 동시에 생리 기간인 부정한 시기에도 경계하라는 말씀으로 성의 성스러움을 강조하시는 말씀을 상기합니다.
    동양 문화에서는 근친 상간이나 동성애가 아주 드물었지만 서양 문화에서는 근친 상간이나 동성애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 져온 역사를 기억합니다, 이제 미국에 이민 온후 자녀들의 동성애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런 가정을 위해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행위에서 벗어나는 일이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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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젊은 세대가 역겨운것에 많이 포용하며 어른들의 생각이 옳지않고 시대에 뒤졌다고 주장하는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어른들도 점점 역겨운 생각을 포용해갑니다.
    모두가 십자가앞에 무릅끓고 늦기전에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거룩하도록
    기회를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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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이 제 아무리 똑똑하고 다 아는 것 같아도 감정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자신과 남을 비극으로 몰아넣습니다. 성을 불에 비유하신 목사님 해설이 이해가 됩니다. 자기 성적 만족을 위해 상대방의 인간다움을 해치는 일 – 인권의식이 미개했던 고대 사회나, 빠르게 도래하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 미래 사회에서 – 은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을 재차 확인합니다. 화를 참지 못해 막말을 내뱉거나 상대방을 주먹으로 치는 일은 사과하고 보상하는 길이 비교적 용이하지만 성적인 희롱이나 폭력은 피해자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입니다. 더우기 연령이나 지적발달 면에서 백퍼센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에게 행해지는 성적 가해는 사회 전체가 함께 미안하고 아파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을 읽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네 딸을 범하지 말라”가 빠져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 (6절), 어머니 (7절), 계모 (8절), 누이 (9절), 친손녀, 외손녀 (10절), 계모의 딸 (11절), 고모 (12절), 이모 (13절), 숙모 (14절), 며느리 (15절), 형제의 아내 (16절), 여자와 여자의 딸 (17절), 아내의 여형제 (18절), 월경중인 여자 (19절), 이웃의 아내 (20절), 남자 (22절), 짐승 (23절)…17절에서 말하는 여자와 여자의 딸도 선뜻 네 딸을 범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쓰여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레위기로 정리되고 편집된 과정이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고여 있는 물에 돌을 던졌을 때 파장이 일듯 여러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수면에 떠오른 물방울 같은 생각들이 곧 터져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듯 나 또한 거룩함을 향해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존재로 사는 삶은 성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과 말 행동에서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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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에 대한 규율은 변화했습니다. 어느 성행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합법이었던게 불법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불법이었던게 합법이되기도 합니다. 일부다처제와 동성결혼이 그렇죠. 특히 동성결혼은 많은 가족들과 교회안에서 논란거리가 되었고. 의견차이를 해결하지 못해서 (혹은 해결하고 싶어서) 가족과 지역사회와 교회가 갈라지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온 규율이 파격적이라 생각하는 건 대부분이 남성에게 고하는 얘기였습니다. 구약시대적 배경을 보면 여성은 남성의 소유였고 성적 대상이었으며 남성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씨받이같은 존재였습니다. 여성은 성적으로 흥분하면 안되기에 잔인한 할례의 대상이었습니다. 본문은 남성에게 자신의 성욕을 자재하라고 얘기합니다. 그 시대에 흔했던 무근별한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특히 남자들에게 얘기합니다. 성욕이 불 같아서 우리를 자칫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폭력과 권력을 휘두르지 말고. 경건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모자람을 고백하고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덧붙여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동성결혼에 대한 의견차이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서로 불편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현실이 어찌하더라도 사귐이 계속된다면 성령님이 도우실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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