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7장 1-16절: 생명 경외의 마음

해설:

식용으로 짐승을 도살할 경우에도 제물을 바치듯 도살해야 합니다(3-9절). 도살하려는 사람은 그 짐승을 회막 어귀로 끌고 와서 제사장 앞에서 잡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어귀에서 제단 쪽으로 뿌리고, 기름기는 제단에서 불살라 바칩니다. 그런 다음 가슴살과 왼쪽 넙적다리를 제사장 몫으로 주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서 먹을 수 있습니다. “숫염소 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음행”(7절)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서 배운 미신이었습니다. 짐승을 도살할 때는 숫염소처럼 생긴 귀신에게 먼저 바쳐야 악귀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규정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인간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 절차를 통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먼저 바치고 난 후에야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고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 됩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르는 모든 음식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둘째, 이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야만의 문화를 제어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과거에 개를 도살하는 야만적인 방식들이 유행했던 것처럼, 인간의 야만성은 한도 끝도 없는 폭력과 폭행을 낳습니다. 모든 도살 행위를 제사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육식의 양을 제한되고 도살하는 과정에서 야만성은 통제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피를 먹지 말라는 엄명을 주십니다(10-14절). “생물의 생명이 바로 그 피 속에 있기 때문이다”(11절)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피를 먹는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탈취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도발이요, 또한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입니다. 사냥을 했을 때도 피는 땅에 쏟고 흙으로 덮어야 합니다(13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외국 사람들도 모두 지켜야 합니다. 만일 이 규정을 어기면 “나의 백성에게서 끊어진다”(14절)고 경고합니다. 저절로 죽거나 야수에게 물려 죽은 짐승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짐승의 피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으면 저녁때까지 부정해집니다(15절).

묵상: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 서구 사회의 지나친 육식 문화로 인해 짐승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생각합니다. 끝도 없이 증가하는 육식 소비로 인해 수 많은 육축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환경 속에서 야만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육축들이 도살되고 가공되는 과정을 보아도 “이것은 죄다!”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자 골목에 가득 들어선 식당에서 고기가 소비되는 모습은 인간의 탐욕과 야만성이 얼마나 큰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생명들이 이토록 잔인하게 사육되고 도살되고 가공되어 소비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아파하실까요?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왜 모든 육축을 제물 드리듯 도살하게 하셨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또한 오늘 이 거대한 육축 소비 사회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내 식탁에 오르는 모든 음식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희생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생명은 나 혼자의 생명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희생한 모든 생명들을 대신해 오늘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끼니마다 내 식탁에 마련된 음식으로 인해 마음 다해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생명 덕에 살고 있는 나의 생명이니, 나도 다른 생명을 위해 살아가기로 다짐합니다. 식물이든, 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그 생명들을 돕기 위해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3 thoughts on “레위기 17장 1-16절: 생명 경외의 마음

  1. 고기 맞을 한번 맞본 승려들이 절간의 파리 조차 남기지않는 다는 속어 속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알게 됩니다, 처음 농경 사회에서는 가축을 도륙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사막에 유랑하던 유목민들은 가축들을 쉽게 도살해서 식량으로 삼는 문화를 생각해봅니다, 주지육림이라는 단어가 부유한 세도가에서 부의 상징으로 느껴지듯 육식에 대한 인간의 잔인 성을 생각해 봅니다.
    모든 생명을 경외하며 엄숙히 다루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육식에대한 내 식생활에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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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 몇 년 사이에 “의식화”가 되었습니다. 환경 문제를 비롯해 경제적인 불평등, 이민자와 난민의 처지, 여성의 성적 권리침해, 노인 복지와 권익, 유색인종 차별…개별적인 이슈가 아니라 곳곳에 교차점을 이루는 이슈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고 옷을 입던 때가 언제였나…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마켓에서 음식재료를 살 때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옷을 봐도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만들어진 옷인데도 “싸게 잘 건졌네!” 하는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감기약을 먹으면서는 이 흔한 약을 쉽게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원주민 인디언 보호(?) 지역 출신으로 여선교회 디렉터로 일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오일과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기업과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뉴스에서 다룰 때 확 부각되지만 평소 원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이나 의약품 부족 사태는 아는 사람이 없답니다. 인디언들은 다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산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약값이나 식료품비는 (유통운송비 때문인지) 우리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도 합니다. 음식 문화도 이제는 지구 온난화와 연결시켜 생각해볼 때입니다. 아마존 레인포레스트가 농지와 축산지 확보는 물론 목재와 각종 천연광물을 얻기 위해 국가 차원을 넘는 국제적인 경제개발의 논리 앞에서 불에 활활 타는 것을 불과 몇 달 전에 뉴스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창조하신 세계를 보호하고 가꾸는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가 뿌린 인권운동의 씨는 한국에서 이민 와서 사는 나까지도 그 열매를 따 먹게 했습니다. 내 생명이 중하기에 남의 생명도 중하고, 모든 생명이 소중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이 땅 구석구석으로 스며 들어가 생명을 지탱하고 창조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실로 우리는 그분의 피값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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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모든것이 주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음을 고백 합니다. 청지기로 삼으셨으니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를 원 합니다. 식사할때마다 마지막 성찬을 기억하고, 오몀 되어가는 세상을 볼때
    창조 질서 회복 사역에 동참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십자가의 보혈만이 살길임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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