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장 1-59절: 율법을 넘어서시는 예수님

해설: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당시, 제사장은 공중 보건의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특별히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악성 피부병”(2절)이라고 번역했고 개역개정성경은 “나병”이라고 번역한, 전염성을 가진 악성 피부병이 그 예입니다. 의학이 발전한 후에야 다른 종류의 악성 피부병과 한센씨병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병이 깊어진 후에는 한센씨병만의 특별한 증상을 보였지만, 초기에는 다른 악성 피부병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악성 피부병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만일 한센씨병을 초기에 진단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길은 어떤 사람에게서 피부병이 발견되면 최악의 경우(한센씨병)를 전제하고 최선의 주의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13장과 14장에 제시된 규정은 이런 배경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일단 피부병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보여서 전염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 판단은 제사장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염성 있는 피부병으로 판단되면 제사장은 부정하다고 판정합니다(2-3절). 부정하다고 판단되면, 즉 한센씨병에 걸렸다고 판단되면, 그 사람은 “입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하며 “코밑 수염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고 외쳐야”(45절)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은 “진 바깥에서 혼자 따로 살아야”(46절) 합니다. 환자 자신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그 병이 전염되고 확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던 당시에는 그것이 유일한 방책이었습니다. 

만일 부정하다고 선언할 정도의 상태가 아니면 일 주일 동안 격리시킨 후에 다시 검사하고, 그래도 확인이 되지 않으면 다시 일 주일 동안 격리시킵니다. 여기서 “격리시키다”라는 말은 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염성이 없고 피부병에 차도가 있으면 제사장은 그 사람을 정하다고 판정합니다(4-6절). 하지만 정하다고 판단 받은 후에 그 피부병이 재발하고 확산되면 다시 제사장에게 보여야 합니다(7-8절). 이 원리는 모든 종류의 악성 피부병(9-44절)과 악성 곰팡이(51절)를 판정하는 데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센씨병처럼 전염성 있는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진 바깥으로 나가 혼자 살도록 격리해야 하고, 악성 피부병이나 악성 곰팡이가 묻은 옷은 모두 불태워야 합니다.

묵상:

악성 피부병에 대한 세밀한 규정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의학의 혜택에 대해 감사함을 느낍니다. 현대 의학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집단 지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의사나 약물의 도움이 필요 없도록 건강을 지키는 것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건강을 잃었을 때 의사와 약물의 도움을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다만, 치료는 의사가 하지만 치유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사나 약물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부여하신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의사와 약물의 도움을 받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이 규정을 읽으면서 또 하나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인 한센씨병을 연구하여 진단과 치료의 길을 열어 준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 드립니다.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 대다수 문명국가에서 한센씨병은 근절되었습니다. 

특별히 하와이 근처에 있는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씨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그 병에 전염된 후, 그 병이 자신의 몸에서 깊어가는 과정을 일기와 사진으로 남겨 한센씨병 연구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 다미엔 신부를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센씨병 환자들을 위해 목회하며 그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오방 최홍종 목사와 애양원교회에서 한센씨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손양원 목사를 기억합니다. 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고, 그들의 몸에 손을 대어 치유해 주셨습니다(마 8:3). 한센씨병 환자들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멀리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절망과 아픔을 긍휼히 여기시고 친구 삼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악성 피부병에 관한 율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효력을 잃게 됩니다. 

4 thoughts on “레위기 13장 1-59절: 율법을 넘어서시는 예수님

  1. 그 당시 문등병에대한 진단과 진단 후에 격리를 하여 공중 위생을 경각시킴으로 그 문등병이 퍼지는 것을 예방하며 또 옷이나 가죽제품에 곰팡이가 실면 어떻게 대처해서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제거하는 말씀을 대하며 아직 의학이 발전되지 못 했던 시기의 공중위생과 일반의학의 열학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인류의 생명이 연장되고 출생까지도 조절하는 현대의학의 흐름 자체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지만 우리에게 주신 의료의 혜택에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건강의 축복에 감사하며 그 축복갖고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는 믿음으로 장성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제사장의 책임이 막중했겠습니다. 누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 하나로 끝나는 일인지 여러 사람에게 퍼질 병인지부터 살펴야 했을 것이고 격리 되었던 사람이 다 좋아져 회중 안으로 돌아와도 되는지 아닌지도 판단해야 하고 때와 필요에 맞추어 제사에, 행사에, 분쟁 조정에…정해진 임무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언제나 백성을 돌보고 기도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에 사랑과 연민이 없으면 할 수 있었겠나 싶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레위 가문에서 구별되어 세워졌지만, 현 시대에도 종교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제사장은 모델이 됩니다. 직업으로써 제사장을 보면 부르심을 받은 성직이면서 전문직입니다. 전문직(profession) 과 성직(vocation) 이 하나로 일치되는 지점은 책임과 사랑이 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둘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사랑하기에 책임이 무겁지 않고,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사랑하면서 평생동안 전념하여 한 길을 갈 수 있다면 이상적인 성직자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제사장으로 바르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셨어도 제사장이든, 왕이든 다 훌륭하게 살다 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은 목사라면 뭔가 다르기를, 완전할 수는 없어도 완전에 가깝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제사장에게 특별한 옷을 지어 입히고 7일동안 제사를 올린 뒤에 제사장직을 받는 것을 읽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으로 태어나고, 이 시대에는 제사장으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의 모델이면서 예배자의 모델도 되십니다. 우리의 이상이며 현실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사랑과 책임을 감당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Like

  3. 영혼의 악성 피부병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정 하다고 선언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발전된 의학으로 치료를 받지만 세상적인 헛된 곰팡이에 감염 되었을때
    더 퍼지기전에 성령의 불로 온전히 태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염으로 허덕이는 세상을
    깨끗하게 회복 시키시는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4.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건 지극히 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그저 생명연장이 아니라 우리가 병든 이들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제사장으로 불러서 병든 이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하시고. 병든 이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의술을 동원해서 돕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병은 기도로 치료할 수 있으니 치료를 거부하는 건 그 사람의 고정관념이지 하나님이 바라시는게 아닙니다.

    세균학이 처음 발전될 때 영국에선 콜레라가 창궐했습니다. 그때에는 콜레라는 사람들이 마시던 물에 있는 박테리아가 아니라 썩은 냄새로 전염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썩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너도 나도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습니다. 어느 의사는 세균학을 부정하려고 콜레라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들어있는 물을 마시면서 자신은 괜찮다고 얘기했습니다. 결국 그 의사는 콜레라에 걸렸습니다.

    지금도 영적치유라는 이름에 여러 질병 특히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는 경우가 기독교인들에게 종종 있습니다. 치료의 타이밍을 놓쳐 병세가 더 악화 되기도 하고 ‘영적치유’중에 환자가 죽기도 합니다. 얼마나 슬프고 아이러니 한 일인지요.

    제 주변에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될 수 있다면 그들의 고통이 얼른 덜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을 위해 힘쓰는 의료인들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계속 발전되는 의술과 보건시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Like

Leave a Reply to Cancel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