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1장 1-47절: 내가 거룩한 것처럼

해설:

11장에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음식 규정(코셔)이 나옵니다. 코셔 규정은 전체 동물을 다섯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 “땅에서 사는 모든 짐승”(2절) 중에 “굽이 갈라진 쪽발이면서 새김질도 하는 짐승”(3절)은 정결한 것으로서 잡아 먹을 수 있습니다. 두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짐승은 부정한 것으로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낙타, 오소리, 토끼, 돼지가 그 예입니다. 이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하며, 그것들의 주검도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8절).

둘째, “물에서 사는 모든 것”(9절) 중에서는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먹을 수 있습니다.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10-12절). 그것들의 시체도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새의 경우에는 어떤 기준이 없이 먹어서는 안 되는 새의 종류만 나열됩니다(13-19절). 이것들의 주검도 역시 접촉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곤충의 경우에는 “발과 다리가 있어서, 땅 위에서 뛸 수 있는 것”(21절)만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피해야 합니다.

다섯째, “땅에 기어 다니는 길짐승”(29절)은 모두 피해야 합니다(29-30절, 41-42절). 기어다니는 길짐승은 주검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도 접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길짐승을 접촉하면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43절). 

부정한 생명체를 먹을 경우, 저녁때까지(하루가 끝나는 시간)만 부정해집니다. 또한 부정한 생명체의 주검에 접촉해도 저녁때까지 부정해집니다(24-28절, 39-40절). 부정한 생명체의 시체에 접촉된 것은 그릇이든 옷이든 모두 부정해집니다(32절). 부정해진 물건들 중 깨뜨릴 수 있는 것은 깨뜨려야 하며(34-35절) 깨뜨릴 수 없는 것은 물 속에 담가 두어야 합니다(32절). 하지만 부정한 것과 접촉해도 부정해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36-38절). 

이렇게 복잡한 음식 규정을 주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거듭 하십니다(44절, 45절). 

묵상: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수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안식교 같은 교단에서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에 유익하냐 해로우냐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믿고 가르칩니다. 어떤 학자들은 부정한 것으로 구분된 생명체들은 모두 이집트와 가나안의 종교들이 신으로 섬기는 것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학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 다수의 지지를 받는 학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백년 동안 타민족들 속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데 이 음식 규정이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We are what we eat”(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다)라는 말이 있듯, 음식은 각 개인의 성향과 기질을 결정하고 또한 그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형성합니다. 부정한 생명체와 정한 생명체를 나누는 기준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롬 10:4). 음식에 대한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음식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막 7:19)고 선언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서 율법에 금지된 생명체들을 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거부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도 하지 말아라”(행 10:15)는 음성을 듣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음식 규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했던 ‘잠정적 규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을 가려 먹음으로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만들어 내시는 삶의 변화를 통해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우리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음식에 대해서는 위생과 환경과 건강을 고려하면 충분합니다. 

4 thoughts on “레위기 11장 1-47절: 내가 거룩한 것처럼

  1. 영의 양식 즉 주님의 말씀을 먹는것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것 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우선 깨끗한 음식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고 주님의 계획을 이루는 믿음을 원합니다.
    가족들과 이웃과함께 거룩한 길을 걷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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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양 한 음식물들의 규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런 규정에서 해방 시켜 주시듯 이제는 과거의 모든 규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대 원칙안에 머물며 지켜 행 하기를 간구합니다.
    음식이 아닌 사랑에서 구별 된 삶이 이루어 지기를 다시한번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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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 배경을 알든 모르든 흥미롭게 보입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살았던 아파트 단지가 유대인 동네에 있어서 큰 아이 초등학교는 유대인 60퍼센트, 한국인 40퍼센트 쯤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해질 때 시작하여 토요일 해질 때까지 지키는 안식일을 준비하느라 유대인 엄마들은 집안을 싹싹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매주 하는 일이어서 특별하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집집마다 다 같아서 말 안해도 서로 다 알고 이해하는게 어느 면에선 부러웠습니다. 가사일을 하려고 오는 남미출신의 도우미들도 금요일엔 어떻게 청소하고 뭘해야 하는지를 훤히 알고 있어서 반 유대인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는 날 서로 음식을 해오면 딸아이 유대인 친구 중에 특히 만두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는데 그 엄마는 마켓에서 무슨 표 만두를 사면 좋으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식품에는 코셔인증을 해놓은 상품이 없어서 돼지고기가 들어갔는지 확인해주는 정도에 그쳤을 뿐입니다. 지킬 것이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할 것 같은데도 워낙 그렇게 살았기 때문인지 다 알아서 잘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게도 느껴졌습니다. 대신, 안식일을 중심으로 주간단위로 똑같이 움직이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같이 모여 한 동네에 살아야지 만약 저들이 한국 사람들 사는 코리아타운 같은 곳에 들어와 산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렵겠나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규정이 있어 공동체로 살아 남을 수 있었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니 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금요일 해지기 직전이면 유대인 남자들은 검은색 높은 모자나 키파 (kippah/yarmulke)를 쓰고 긴 끈이 달린 검정색 정장차림으로 삼삼오오 회당으로 걸어갑니다. 이 때 여자들은 거의 안 보이는데 대신 토요일 아침이면 짙은색 옷을 입고 머리는 가리고 (일정한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한 두개씩 가지고 있답니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1마일 내에 회당이 세 개나 있습니다. 궁금하기도 해서 커다란 학교도 같이 운영하는 한 예배당에 들어가려 했다 수위한테 저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학교 문의도 하고 예배당 안도 좀 보면 안될까해서 들어가려고 한다 했더니 학교 문의는 전화로 미리하고 재학생 부모의 추천을 받아 함께 방문을 해야하고 예배당은 등록된 유대인 멤버만 들어갈 수 있고 옷차림에 대해서도 (기억은 잘 안나는데) 몇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reformed congregation 예배당은 이보다 좀 더 오픈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딱히 orthodox 라는 표시를 하지 않은 회당인데도 문턱이 높았습니다. 공동체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피아 구분이 선명해야 하고, 경계와 배타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임을 봅니다. 예수님 덕분에 모든 정결규정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워진 새 자유 앞에 책임적인 인간으로 서야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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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캐나다 해외동포로 한국에서 다른 한인이민자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옛 소련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김은 한국인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한국말을 못해서 영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했는데 그들이 언어를 잊었더라도 음식문화는 지켰습니다.

    스탈린 시대 때 강주이주를 당하면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죽었고.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곳에 현지인들이 먹지 않는 재료와 옛부터 내려온 김장법을 접목해오며 음식문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나누며 추운 겨울들을 버텨냈을거라 생각합니다.

    북미에 정착한 이민자로 제 삶이 어떤지 돌아봅니다. 식문화도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자극적인 것들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있는 성전을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욕구를 절제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묵상말씀을 생각하며 주신 음식 감사히 먹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돕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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