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5장 1-19절: 악행의 결과를 해결하는 길

해설:

속죄 제물에 대한 규정에 이어서 “죄가 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거짓 증언(1절), 죽은 짐승에 접촉된 것(2절),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것(3절), 맹세를 지키지 않은 것(4절)이 그 예입니다. 비록 그것이 죄가 되는지 알지 못하고 그렇게 했더라도 그것은 죄가 됩니다. 이와 같은 죄를 해결하려 할 경우, 그 사람은 먼저 “자기가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를 고백하여야”(5절)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서 암양이나 암염소(6절),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7절) 혹은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11절)를 속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드릴 때는 하나는 속죄 제물로, 다른 하나는 번제로 드립니다. 

제물을 드릴 때 “어느 하나라도 성실하지 못하는”(15절) 경우에도 죄가 됩니다. 제물에 하자가 있거나 제물을 드리는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경우,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제물로 비차고, 그 제물 값의 오분의 일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바쳐야 합니다(16절). 일종의 보상금인 셈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 중에서 어떤 것을 실수로 어겼을 때에도 흠 없는 숫양을 제물로 드리고 그 값의 오분의 일을 금전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것을 ‘속건제물’이라고 부릅니다. 

묵상:

죄에는 ‘행함의 죄'(sins of commission)와 ‘행하지 않은 죄'(sins of omission)로 구분됩니다. ‘행함의 죄’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하고, ‘행하지 않은 죄’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한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앞의 것은 적극적인 죄라 할 수 있고, 뒤의 것은 소극적인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약 4:17)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그것까지 죄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가르칩니다. 

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속죄제물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진실로 뉘우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로 인해 사람에게 끼친 “악행의 결과”(17절)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건제물의 규정을 주십니다. ‘회개'(repentance)는 ‘회복'(reparation)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줄 알면서 “나는 하나님께 용서 받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손을 씻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3 thoughts on “레위기 5장 1-19절: 악행의 결과를 해결하는 길

  1. 오늘 주시는 말씀은 평생 나를 따라 다니며 죄인임을 상기 시키는 말씀 입니다, 오늘 날 같이 밀짐 한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죄를 짓게 되므로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제사장에게 속죄와 속건 제물을 들고가야 할 형편입니다.
    이 모두 예수님의 구속 사업으로 해방되었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같은 죄의 덧에 걸리지 않게 늘 정결 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바랄 뿐입니다.
    내 자신을 깨달게 해 주는 오늘의 말씀을 회개와 함께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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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주 주님께서 슬퍼하시는 일을 저지릅니다, 마음을 찢으며 십자가앞으로 나옵니다.
    죄를 깨닫고, 다시는 같은죄를 범하지 말도록 도와주십시오.
    가족과 이웃과함께 주님과 동행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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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는 죄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누구나 죄를 지었고 앞으로도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느 행동은 하면 죄임을 알게하시고 그 죄를 어떻게 사함 받을 수 있을지 알려주셨습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렸더라도 어떻게 다시 하나님의 얼굴 볼 수 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이스라엘인들은 율법을 통해 자신을 높이거나 남을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율법이 그저 옳고 그름을 가르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죠.

    저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율법에 못 미치는 자신을 비하하고. 다른이들을 정죄하고. 믿음은 그저 시비의 자에 맞추어 재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교회의 모습을 보고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주님이 제 마음에 거하셔서 율법이 제 삶에 녹아들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온전하여 제 언행을 구분하게 도와주세요. 제가 모자라서 이해안되는 율법이 신앙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제 마음 다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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