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4장 1-35절: 죄의 무게와 용서의 값

해설:

“실수로”(2절)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드리는 제물에 대한 지침이 이어집니다. 이것을 ‘속죄 제물’이라고 부릅니다. 제사로써 용서 받을 수 있는 죄는 실수로 저지른 죄 뿐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범한 죄의 경우에는 제사로 속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율법학자들은 고의로 지은 죄는 선행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경우에는 잘못을 한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규정이 달라집니다. 먼저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에 관한 규정(3-12절)이 나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받은 제사장이 죄를 지어서, 그 벌이 백성에게 돌아가게 되었을 경우”(3절)라는 말씀은 제사장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암시하십니다. 제사장은 한 개인이 아니라 백성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거룩해지면 그 거룩함이 백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타락하면 그 부정적 영향력이 백성에게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죄를 속죄 하려면 흠 없는 수송아지를 드려야 합니다. 그는 수송아지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에 손수 송아지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제사장이 그 피를 받아 회막 안으로 들어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쳐 있는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고(6절) 분향단 뿔에 돌아가면서 피를 발라야 합니다. 죄 지은 사람이 죽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뜻입니다.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바닥에 쏟아야 합니다(7절). 그런 다음 화목제물을 바칠 때처럼 내장에 붙은 기름기를 제거하여 번제단에 올려 태워 바치고(8-10절), 남겨진 모든 것 즉 가죽과 살과 뼈와 내장과 똥을 “모두 진 바깥, 정결한 곳 곧 재 버리는 곳으로 가져 가서, 잿더미 위에 장작을 지피고, 그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야”(12절)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사장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어지는 규정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수로, 함께 책임을 저야 할 잘못”(13절)을 저질렀을 대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럴 경우, 총회로 모여 수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속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14절).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수송아지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손수 잡아야 합니다(15절). 제물을 드리는 절차는 제사장의 죄를 속죄하는 절차와 동일합니다(16-21절). 제사장의 개인적인 죄와 백성 전체의 죄는 그 심각성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최고 통치자”(22절)가 실수로 죄를 범했을 때에는 “흠 없는 숫염소”(23절)를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회막 안에 가지고 들어가 뿌리지 않고 번제단 뿔에만 바릅니다. 그런 다음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바닥에 쏟아 버립니다(24-25절). 나머지 절차는 동일합니다. “일반 평민”(27절)이 실수로 죄를 범했을 때는 “흠 없는 암염소”(28절)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양을 제물로 쓰려면 “흠 없는 암컷”(32절)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제물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제단 밑바닥에 쏟아 버려야 합니다.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류를 위해 “단번에 드려진 영원한 속죄 제사”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죽으신 과정은 속제 제사를 드리는 과정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의 제사 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드리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립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13:11-12)라고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진 바깥”에서 쓰레기처럼 태워졌던 속죄 제물처럼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보혈의 피로써 죄 씻음을 받습니다. 더 이상 짐승의 피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물 드리는 것은 값비싼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부담 그리고 심적 부담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회개하는 것은 돈도, 시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회개와 용서가 값싸졌다고 오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몸으로 영원하고도 완전한 희생을 드리셨기에 우리의 회개와 용서는 무한대의 값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불러왔을 정도로 무겁고, 우리가 받은 용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얻은 무한대의 은혜입니다. 

3 thoughts on “레위기 4장 1-35절: 죄의 무게와 용서의 값

  1. 감사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금년에는 온 가족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새해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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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잘못을 저지르면 그 결과가 금방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오랜 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아픔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고 죄의 영향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죄를 범한 당사자도 피해를 입은 사람도 죄로 인한 아픔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죄가 크거나 작거나, 고의거나 비고의거나 죄는 무게가 있고, 흔적이 있습니다. 법의 심판을 받아 죄값을 치루는 것과 용서를 받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과 성전에서 속죄제를 올리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영향권 밖에 계신 분입니다. 내가 저지르는 잘못이 하나님께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는 나부터 파괴합니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속죄제를 올리기 위해 짐승을 잡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속죄 짐승의 피를 뿌리고 기름을 태워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그 냄새를 맡으며 나도 돌아볼 것 같습니다. 사람 사이에, 내 안에 죄는 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제사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사로 우리를 다 받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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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스라엘 민족은 몇번이나 하나님께 등 돌렸습니다. 에굽을 탈출하고 나서 우상을 섬기고. 왕국을 건설하고도 다른 신을 섬기며 눈앞의 부와 향락을 쫓았습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의 피 대신에 우리 죄를 사할 방법이 없는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나타납니다. 긴 역사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인도 미국인도 크게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옛이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을 숭배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위해 남을 속이고 해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게 치닫아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돌아보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정당화하거나 잊으려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된 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돈을 섬기지 않고 예수님의 좁은 길을 쫓게 인도하여 주시고. 민족의 우월함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안을 수 있도록 긍휼한 마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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