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장 1-17절: 번제로 드려지는 삶

해설:

출애굽기 40장은 회막이 완성되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는 묘사로 끝납니다. 성막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찼기에 모세는 감히 그 성막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출 40:35). 레위기 1장 1절은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허락하실 때에만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현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회막 안에서 행할 일들에 대해 지침을 주십니다. 회막에서 행하게 될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입니다. 그렇기에 제사와 제물에 대한 지침을 주십니다.

우선, 번제에 대한 지침이 나옵니다. 우리 성경은 히브리어 ‘올라’를 ‘번제’라고 번역했습니다. ‘번'(燔)은 ‘불사르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burnt offering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제물을 holocaust라고도 부르는데, 제물 전체를 바친다는 의미를 강조한 번역입니다. 나치 정권이 유대인 전체를 제거하려는 목표를 세웠기에 비유적으로 ‘홀로코스트’라고 부릅니다. 

번제를 드릴 때는 소나 양(2절) 혹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14절)를 써야 했습니다.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이들을 위한 규정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정결례를 위해 이 규정을 따릅니다(눅 2:24).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릴 때는 “흠 없는 수컷”(3절, 10절)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수컷으로 규정한 이유는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은 제사에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제물을 도살하고 각을 뜨는 일은 모두 남성이 해야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이 제물과 자신을 동일화하게 하려면 수컷을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짐승을 도살하기 전에 제사 드리는 사람이 그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했는데(4절), 이것도 역시 그 짐승이 제사 드리는 사람을 위해 대신 희생 당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제사 드릴 사람은 손수 짐승을 도살하고 각을 떠야 했습니다(5-6절, 11-13절, 16-17절). 제 손으로 짐승을 도살하고 각을 뜨면서 제사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죽고 있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이 모든 과정을 지도하고 감독해야 했습니다. 제사 드릴 사람이 짐승을 도살하면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제단 주변에 뿌렸습니다(5절, 11절, 15절). 유대인들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제단 주변에 뿌리는 것은 생명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준비된 제물을 제단에 올려 완전히 태워 없앱니다. 제물이 태워질 때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이렇듯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9절, 13절, 17절)입니다.

묵상:

번제에 대한 규정을 현대인의 시각으로 읽으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한정한 육식 소비를 위해 현대인들이 짐승을 사육하는 방법, 도살하는 방법 그리고 소비하는 방법을 보면, 현대인들이 훨씬 더 미개하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조심할 일 중 하나는 현대인의 시각과 가치관으로 과거의 일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현대인이 과거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고 더 지성적이며 더 양심적이라는 전제는 근거가 없습니다.

번제는 자신의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는 절차입니다. 당시에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떠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이고 각을 떠야 했습니다. 그런 일에 숙련된 사람도 있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해 보지 않은 일입니다. 거북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행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철저하게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준비한 제물이 제단에서 완전히 태워 없어질 때 자신의 인생도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게 되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롬 12:1)라고 권면합니다. 짐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으로 번제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우리의 존재 전체를 태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이상 제물을 드리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제사의 정신까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로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매일의 삶이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죽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참되게 살고 가장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2020년, 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5 thoughts on “레위기 1장 1-17절: 번제로 드려지는 삶

  1. 하나님께 번제물을 바치는 규정으로 새해 묵상을 시작합니다. 수송아지와 염소 양 비둘기들이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내는 소리와 짐승의 피에서 나는 비린내, 살점이 타는 냄새 매캐한 연기…화제를 올릴 때 나는 냄새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는데 이 말씀 그대로를 믿자니 하나님이 무슨 괴물 같고, 이걸 피하자고 내 구미에 맞는 해석을 하자니 말씀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아 난감합니다. 사냥을 해서 먹잇감을 구하던 옛날이나 마켓에서 고기를 사다 구워먹는 오늘이나 육식을 하는 한 우아한 섭취는 없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위해 짐승 잡는 광경을 상상할 때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야만적인 제사를 원하시나…거북했는데 살자고 먹는 우리의 매끼니마다 생각 없는 살상, 무자비한 경제 구조, 무의미한 소비가 일어났음이 보입니다. 이제부터 채식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지는 않지만 사는데 가장 기본적인 먹는 행위부터 이토록 이기적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회개를 주님 앞에 올립니다. 매일 매시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모습인가 스스로 돌아보며 살게 하소서. 새 날을 열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매일 새로운 사귐을 허락하소서.

    Like

  2. 번제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읽으니. 번제의 목적과 참여했던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보게됩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신을 드리기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그 의식이 옛 유대인들의 마음가짐을 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절차에 의미들을 다시 찾아보고 그 깊은 의미를 공부하고 적용해야겠습니다.

    Like

  3. 2020년 1월1일 아침입니다. 금년에 모두하는일과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에게있는 모든 오물을 드러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빛이신주님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새해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